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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7-20 14:02:34
  • 수정 2022-04-13 07: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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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詩人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에 갔다. 이른 아침 욕탕의 풍경은 작은 변화가 있었다. 사람도 많지 않았지만 큰 욕탕 물은 깨끗하고, 넘치도록 틀어놓지 않아 낭비가 없어 좋았다. 긴 두 개의 욕탕중 하나는 완전히 비어 있고 냉탕도 조용했다.

 

무거운 것을 들어야하는 직업 특성상 주말이면 무리하게 움직여 어깨 근육이 뭉쳐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린다. 나름 모처럼 고생한 자신을 위해 좀 시원한 선물을 하고 싶어 때밀이 아줌마 오늘 첫 개시 ‘1호 손님’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사는데 힘들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동네 작은 목욕탕이라 알아서 잘들 지켜주는 오랜 단골 덕분에 살만하다며 넉넉한 미소를 지으신다. 칠순은 넘어 보이는 늙은 때밀이 구슬땀이 민망하여 일을 하신지 몇 년 되셨냐고 묻자 삼십년도 넘었다며 “나는 역사여, 하산을 해도 벌써 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못 하고 있어.”라며 굳게 사연을 묻었다.


때를 미는 행동 하나가 다 신중하고 절도가 있고 나름의 순서와 규칙이 있음을 알았다. 때수건의 거친 정도에 따라 너무 아프지는 않은지, 혹은 약한지, 살성에 따른 밀기의 힘 조절과 물 온도, 이런 세심한 마음으로 어려운 시기에 찾은 손님을 대하는 모습은 나를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나이를 먹어가니 행불무득(行不無得)을 생각하게 된다. 직역하면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고, 노력 없이는 이득도 없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기대할 수 없음”이다. 이것은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기억해야 할 소중한 말이다.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참담하고 근근하게 될 수 있고, 노력에 비해 운이 더하여 좋은 결과를 얻는 행운이 생길 수도 있다.

 

평생 파지를 수거하는 노인이 있다. 그는 내가 일하는 매장에 큰 트럭을 대고 이틀마다 엄청난 양의 박스를 가지고 간다. 각 매장마다 날마다 쉬지 않고 일한 대가는 돈과 굽어진 허리와 관절염이다.


작은 수레를 끌며 이곳저곳 한 두 개씩 줍는 이 보다 한꺼번에 정해진 곳에서 가져가는 편리함은 그저 얻는 게 아니다. 수없이 흘린 땀방울은 때밀이 어르신이 흘린 땀의 농도와 동일하다.

 

모든 노동에 모과향이나 사과향이 날 리 없다. 흘리면 흘릴수록 진실하고 성실하게 생을 살아갈 뿐이다. 현법낙주(現法樂主)는 “최선을 다해 사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는 일상이 되라”는 의미다.


열심히 사는 일이 삶의 한 방편임을 깨달았다가 잊기를 지금까지 번복하고 있다. ‘그래, 내가 걸어가는 길은 때밀이 일보다는 쉬웠어.’ 얼마나 그들보다 쉽게 사는지, 덩실거리며 아름다운 인생의 시기를 거룩하게 피워본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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