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1-08-26 09:34:43
기사수정



 

높은 우물 속에 살다 자신의 척추에 기대 졸고 있는 남자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다 발소리 같은 쥐가 지나가고

눅눅한 벽이 체온을 건드리다 명암이 없는 꿈에서 새어나오는

잠꼬대 억눌린 혀끝이 미열의 속내를 가늠하며 신음하는

이명 귓바퀴를 타고 돌며 홀로 수신하는 모국어가 낯설다

낯선 꿈이다 부드러운 악몽조차 따가운 망각 이빨을 맞부딪다

소문처럼 울리는 소리가 우물의 높은 구멍까지 재빨리 올라가다

사라지다 오직 소리만 빠져나가는 거리

짧은 진동에서 자라나는 이끼처럼 매달려 남자는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다

고통에도 지문이 있어 수천 년의 빗물이 따라 흐르는

단 하나의 얕은 골 고이지 않는 빗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

남자의 주름이 깊어지다 온몸을 동여매는 빗물의 사슬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다

더이상 검은 빗물에 물들지 않는 남자의 머리칼이 오래 자라다

홀로 환하다 눈동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우물 밖의 색

짧은 지름의 구멍이 높아지다 남자의 꿈이 낮아지다

자개 같은 바퀴벌레가 가장 우월한 종족의 문신처럼

남자의 손등에 머무르다 남자는,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다

딱딱한 길몽조차 따가운 기억

남자는 기억 속에서 망각을 길어 올리고

망각 속에서 기억을 길어 올리다

자신의 척추에 기대 깨어나지 않는

높은 우물 속의 남자

 

 

 

 

 



열심히 살다 보면 심신이 침하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신만의 벽을 쌓고 잠적하고 싶은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현실세계는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는 수가 많기에 온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곳임을 인정한다. 밝은 곳으로부터 어두운 곳으로 가는 점진적인 해조(諧調)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돌을 쌓은 난층(亂層)을 연상케 하는 우물을 쌓은 화자는 잠시 쉴 것으로 믿는다. (박용진 시인 / 평론가)

 

 

 

 


서종현 시인 

 


202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rtimes.co.kr/news/view.php?idx=17766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안성불교 사암연합회, 부처님 오신 날…
2024 안성미협 정기전
문화로 살기좋은 문화도시 안성
0.안성시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운영
'고향사랑 기부제'
한경국립대학교
만복식당
설경철 주산 암산
넥스트팬지아
산책길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