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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29 09:49:21
  • 수정 2022-04-13 07: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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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여뀌를 만나면 가을이 흐르고 있다는 거다. 어린 시절 6~9월이면 개울가 습지에서 많이 보았던 꽃이다.

 

오래 보았던 것들과 친숙하고 다정한 일은 교감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증거다. 자꾸 잊어가는 꽃을 기억에서 피워본다. 1년생 초본 종자로 번식하며, 매운맛과 식용으로 쓰인다는 점, 어린잎은 나물이나 향신료로 이용되며, 여뀌 즙으로 만든 누룩으로 술을 빚는 유용한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농사에는 문제 잡초가 되는 실과, 득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으니 사는 일의 요지경은 모든 생물이 지닌 미묘하고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찮은 들풀로만 생각했는데 여뀌를 보면 사람도, 꽃도 직업에 귀천이 없이 소박하게 흔들린다. 이삭여뀌, 개여뀌, 바보여뀌, 버들여뀌, 장대여뀌, 가시여뀌, 털여뀌, 흰꽃여뀌, 끈끈이여뀌, 쪽여뀌, 긴화살여뀌, 기생여뀌등 30여종 이름도 다양한 산책길에서 꺽어온 흰색과 붉은색 좁쌀 알갱이만한 크기 동그랗고 긴 명아자여뀌가 화병에서 즐겁다.

 

어느 해인가 그림 전시가 있었다. 푸드 아트 작가의 화려한 음식을 돋보이게 하던 큰개여뀌를 보고 아름다운 알고리즘을 생각했다.

 

흔히 가을은 색을 잃어가는 계절이라 말 한다. 봄부터 색에 물든 사람들이여, 진정하고 다시 색을 들여다보자. 길가다 보이는 꽃물결은 아직 진행형이다.

 

설악초가 말갛게 희고, 과꽃에 안절부절 못 하는 각시나방과 맨드라미 붉은 꽃, 자주달개비, 어수리, 금목서, 층꽃나무와 같은 이 세상에 생명으로 왔다가는 꽃 울음 들어주는 일도 행복하다, 나의 행로처럼.

 

오랜만에 친구와 맛 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갔다. 열 체크, 백신 접종 2주 인증, 080 체크인, 손 소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나고나니 다시는 음식점에 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음식 맛도 모르겠다.

 

우리가 세상과 담합하고 적절한 합리를 구하고 모색하는 사이 기온이 달라진다. 달과 별의 따스함은 점점 차갑게 채도를 낮춘다. 빛나지만 차가운 빛을 온유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나의 채도가 맑고 높아지기 때문이다.

 

청명한 가을이다. 아름다운 여뀌가 한해를 잘 살고 있다. 짧지만 긴 노래를 흔들며 산다. 한 시절 잘 놀다 가자고 내 어깨를 꽃줄기 죽비로 훅 친다. 대체 이 꽃의 희망은 어디서 왔는지 맵게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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