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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12 08:25:37
  • 수정 2021-10-12 08: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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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에 걸쳐 연재되는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는 2019년 9월에 출간되어 3쇄를 찍은 작가 송상호의 책이다. 그가 안성사람들의 자긍심과 안성의 미래를 위해 쓴 책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총 30편의 이야기를 매주 1편씩 안성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도록 만들어졌으며, 안성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편집자 주]

▲ 송상호 작가

[송상호의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닌데 왜 굳이 천주교 성지와 성당을 공부해야 되느냐. 도대체 성지란 게 무엇인데 ‘성지 성지’하는 거냐. 안성에 ‘미리내성지’말고 ‘죽산성지’도 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


어떤 사람은 ‘안성성당’이라하고, 어떤 사람은 ‘구포동성당’이라하는데 어떤 게 맞는 거냐. 왜 이리 안성에는 천주교 관련 건물이 많은 거냐. 이런 질문이 당신에게 있다면, 이 장은 흥미로운 장이 될 것이다.

천주교 신자 아닌 당신이 안성천주교를 공부해야할 이유


천주교 신자도 아닐 수 있는 당신이 이 장을 공부해야할 이유는 단 한가지다. 천주교의 역사를 넘어 우리 안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천주교인들의 역사를 넘어 안성사람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성지가 뭐하는 곳이 길래.


성지란 원래는 예수가 태어나고 활동하고 죽은 곳인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을 성지라고 했다. 중세시대에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이 성지를 두고 전쟁을 벌였는데, 십자군전쟁이라고 한다.


유일신을 섬기는 신앙인들에겐 성지순례는 필수코스여서, 목숨과도 여기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성인들과 순교자들을 위한 공간’이란 의미로도 확대되었다.


한국의 천주교 용어위원회는 “'성지'는 본래 예수님과 관련된 이스라엘 땅을 말하지만, 성모님이나 성인 또는 순교자 관련 사적지나 순례지를 일반적으로 '성지'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는 문제 삼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죽산성지가 일죽면에 있다며. 왜?


원래 한 놈이 유명하면, 덜 유명한 나머지 놈은 거기에 묻힌다. 죽산성지가 딱 그러한 경우다. 안성에 미리내성지만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죽산성지는 다른 말로 ‘이진터 성지’라고도 한다. 그곳의 원래 이름이 이진터였다.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을 치기위해 진을 쳤던 곳이다. 말 그대로 ‘오랑캐(夷)’가 ‘진(陳)’을 친 곳, 즉 ‘이진 (夷陳)’터‘다.


하지만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신자들은 바로 이곳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하거나 처형을 당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렀다. 참고로 삼죽면 소재지에는 ‘두들기’란 마을이 있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포졸들이 묶어서 가다가, 온갖 트집을 잡아 포졸들이 신자들을 두들겨 패곤 했다하여 이름을 ‘두들기’라고 했다.


사실 정확한 고문장소는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다. 거기서 천주교 신자들이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그래서 죽산성지라고 이름 붙였다. 재밌는 사실은 죽산성지의 주소가 ‘일죽면 종배길 115’다. 이를 두고 “왜 일죽성지라고 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일죽면민들이 있다.


선불제인가. 뭘 그렇게 자꾸 ‘미리 내’라고 하지.


15장(안성에 이렇게 웃긴 마을 이름이 있었어)에서 밝혔듯이 미리내란 말은 순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이다. 미리내란 이름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들은 옹기 등을 만들어 팔아서 생계를 이었다. 또한 박해 시기엔 이들은 옹기장수로 위장하여 돌아다니며 교우들의 상태를 살피고, 선교하기도 했다. 원래 미리내는 경기도의 천주교 선교지역의 중요 거점(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이곳이 미리내성지라고 불린 것은 한국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안성에 이렇게 성당이 많았던 겨?


안성성당이라고도 하고 구포동성당이라고도 하는 이 성당은 1901년에 아산 공세리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초대주임신부로 부임한 공베르신부(17장 안성포도의 주인공)는 전에 군수를 지낸 백씨의 집을 사서 임시성당으로 사용해오다가, 1922년에 로마네스크양식의 벽돌 성당건물을 지었다. 1970년까지 안성본당으로 불렸다.


이어서 1970년 6월 29일 안성본당으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된 곳이 바로 대천동성당이다. 1970년 7월 목조 건물을 매입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71년 6월 29일 공사를 완료하고, 1972년 10월 1일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밖에도 안성엔 공도성당(공도읍 만가대길 1), 진사리성당(공도읍 진사2길 65), 죽산성당(죽산면 중부길 13), 던지실성당(금광면 외개산길 30), 양성성당(양성면 만세로 631), 갈전리성당(미양면 갈전장등길 24), 미양성요한마리아비안네성당(미양면 마산길 5), 노곡성당(양성면 관동길 12-7), 죽산 순교성지성당(일죽면 종배길 115), 미리내성지한국순교자103위시성기념성당(양성면 미리내성지로 416 ) 등이 있다.


안성에 천주교가 발달한 3가지 이유.


안성이 왜 이리 천주교가 발달하고 성지가 많았을까. 그 이유는 3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안성이 서울과 삼남(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8장(서울과의 애매한 거리 때문에 안성장이 유명하다고?)에서 본 바대로 안성장이 활성화된 이유와 같다.


둘째는 안성이 서울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박해를 받던 천주교신자들이 도망쳐 나와서, 피난처로 선택한 것은 안성의 위치적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안성이 ‘편안한 성’이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 어디 안성뿐이었으랴. 하지만 왜 하필 안성이었을까. 그것은 앞에서 계속 이야기 한 대로 안성은 그들이 숨어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크고 작은 산이 많아 숨기가 좋았고, 안성평야의 쌀이 있어 살기가 좋았다. 안성장이 커서 옹기장수로 활동하기 좋았고, 다른 도시의 신자들과 접선하기 좋았다.


무엇보다도 안성사람들의 개방성과 정 때문이었다. 외지에서 도망 온 사람들에 대해서 심하게 배척했다면, 천주교 신자들이 안성에 보금자리를 틀 수 없었을 것이다.


안성사람들은 늘 그랬었다. 삼국시대부터 겪어온 파란만장한 역사는 배타성을 키우기도 했지만, 역으로 개방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3대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것이 그 결정적 이유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 안성이 ‘도피성’처럼 보인다. 도피성은 구약성서에서 ‘실수로 죄지은 사람들이 보복살인을 당하지 않도록 피난처를 제공한 성’으로 나온다. 천주교 박해시대에 박해를 피해 안성에 숨어들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조그만 도시 안성에 외국인들이 그리 많이 몰려드는 것(19장 - 안성인구 이대로 좋은가)도 안성에 편안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운이라면 통일한국에서도 안성은 무언가 좋은 역할을 할 걸로 보인다. 안성은 아무래도 ‘편안한 성’이 확실한가 보다.


[덧붙이는 글]
저자 송상호는 안성에 이사 온 지 20년차다. 2001년 일죽에서 ‘더아모의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집)’을 열었으나, 텃새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세 번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2005년부터 안성신문 등 각종 신문에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금광면 양지편마을에서 마을주민과 어울려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19금을 금하라> 유심 | 2018.10.19, <더불어 바이러스> 유심 | 2017.01.18,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유심 | 2016.05.31, <모든 종교는 구라다> 개정판, 유심 | 2015.08.31,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유심 | 2015.08.31, <자녀 독립 만세> 삼인 | 2013.03.19,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 겨> 자리 | 2012.05.07, <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 자리 | 2011.07.20, <예수의 콤플렉스> 삼인 | 2011.06.30., <학교시대는 끝났다> 신인문사 | 2010.07.26, <모든 종교는 구라다> 자리 | 2009.06.30, <문명 패러독스> 인물과사상사 | 2008.12.26 등 총 11권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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