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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27 07:49:11
  • 수정 2022-04-13 07: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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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넓은 돌 징검다리를 건너다 카랑한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물속에 잠긴 돌은 물이끼가 몇 겹을 덮고 감았는지 푸른 옷이 두껍다.

 

유속에 따라 갈퀴발 강약을 조절하며 쌀쌀한 날씨를 즐기는 오리들 날개짓이 유난하다. 오리는 물속 댄스 아티스트다. 모두가 ‘추워추워’하는 관객들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현란한 발동작과 푸덕이는 깃털로 생동감 댄스 신나게 추어댄다.

 

느리고 천천히 달팽이 휴일을 시작한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로 바람의 세기를 느낀다. 보일러 온도가 올라가면 집의 사물도 그때서야 뭉친 어깨를 푼다.

 

굳어 있던 것들이 기를 피고 혈이 돋으면 나도 움직인다. 이불 밖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거실과 주방을 오가며 작은방 창가에 닿은 햇살도 만져본다. 나이든 냉장고가 따뜻함에 겨워 더욱 싱싱한 소리를 내고, 화장실과 베란다와 벗어둔 현관의 신발까지 눈길 맞추고서야 집의 완전한 순환을 확인한다.

 

사람은 인기척을 내어 나같이 세입 해 함께 거하며 사는 사물들을 애정과 관심으로 귀히 여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전 어르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동선을 이동하면 ‘에헴‘하는 소리로 기척의 사인을 주었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내가 오는 것을 은근하고 점잖게 알리는 지혜가 보인다.

 

기척은 나무도 하는 법이다.

 

댓돌에 한 발 올려놓고/ 헌 신발 끈 조여 매는데/ 툭/ 등 위로 스치는 손길/ 여름내 풍성했던 후박나무 잎/ 커다란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 나무의 기척

 

김광규 시인의 <나무의 기척>이란 시를 읽으며 자연계 순환하는 질서에 부산함이 없는 차분한 잎의 순응이 꿋꿋하다. 불안하고 예민하며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운 우리의 마음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다음 시절에 다시 오는 잎이겠지만 우수수 떨어지는 잎은 죽음의 현상인데 긴말 필요 없이 ‘툭’내리는 나무의 기척은 경건하다. 그것은 물이끼를 입은 돌처럼 초연하고, 수 없이 휘저어 헤엄치는 오리와도 다르지 않다.

 

부정에 물들어 살던 시절이 있었다. 부정의 시각은 모든 것을 부정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어떤 현상이든 괴로움이다. 기척을 알아채어 소통하는 여유가 생긴 나이가 되고 보니 생물과 무생물 경계가 없이 세상과 내통한다.

 

안단테로 연주하며 사는 즐거움 그대도 느껴 보기를.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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