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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07 11: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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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에 걸쳐 연재된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는 2019년 9월에 출간되어 3쇄를 찍은 작가 송상호의 책이다. 그가 안성사람들의 자긍심과 안성의 미래를 위해 쓴 책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총 30편의 이야기를 매주 1편씩 안성독자들과 나누는 사이에 최종 30회가 다가섰다. 이 책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도록 만들어졌으며, 안성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의 전편을 기고해준 송상호 작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함께 읽어주신 독자들에게도 머리 조아린다. [편집자 주]

 

▲ 송상호 작가
[송상호의 재미로 보는 안성이야기] 최진연(유적전문 사진 작가)이 지은 <경기도 산성 여행>(주류성출판사,2011.5.21.)은 정말 보물과도 같은 책이다. 12산성에 대한 개별적인 내용과 사진은 이 책을 참조하기를 권한다.

 

나는 12산성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일단 아래의 표를 참조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 아래 표는 책 <경기도 산성 여행>에 나온 내용을 참고해서 나만의 표로 만들었다.

 

거의 모두 삼국시대에 지어진 이유.

 

위의 표에서 12개의 산성들은 거의 대부분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 파란만장한 삼국시대의 안성이야기를 1장(왜 하필 내혜홀 광장이라 했을까)과 3장(안성이란 이름에 그렇게 깊은 뜻이)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거기다가 12장(안성이 죽산보다 작을 때도 있었다고?)에서 양성과 죽산 또한 파란만장한 삼국시대를 보냈음을 보았다. 오고 오는 외적들의 침입을 막으려면 당연히 산성이 많이 지어졌으리라. ‘편안한 성’이 되려면 ‘편안하게 만드는 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자기사람들을 지켜야 하니까.

 

왜 어떤 성은 삼국시대, 어떤 성은 삼국-조선시대?

 


위의 표에서 보면 어떤 성은 ‘삼국’이라고 적혀 있고, 어떤 성은 ’삼국 -조선‘이라고 적혀 있다. 눈치 빠른 당신은 벌써 알았을 게다. 삼국시대에 처음 성이 만들어졌고, 조선시대에 중건해서 썼다는 것을.

 

왜 두 가지로 표현된 산성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에도 어떤 식으로든 적을 막는 성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등의 외침을 막을 때 함께 한 성이다. 실제로 서운산성은 27장(안성의 수많은 녹두꽃들)에서 살펴본 대로, 임진왜란 때 홍계남 ⸱ 이덕남⸱ 홍자수 장군이 활약한 산성이다. 고려시대 송문주 장군이 몽고군을 막아낸 죽주산성도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다.

 

안성에 도성이 아닌 산성이 왜 이리 많을까. 

 

안성에 산성이 12개나 있다. 도시 규모에 비해서 왜 그렇게 많을까. 그것은 그만큼 외침이 잦았다는 이야기다. 또한 외침을 막아내려는 의지를 끊임없이 나타내었다는 말이다.

 

거기에다가 하필 도성이 아닌 산성이 많은 것은 21장(금도끼가 네 도끼냐, 은도끼가 네 도끼냐)에서처럼 안성에 깊은 산이 많기 때문이다. 안성은 사방이 산이라서 산 자체가 성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 산에다가 돌만 제대로 쌓으면 산성이 되는 곳이다. 산성이 많은 것은 분명히 안성만의 특징이자 자랑이다.

 

산성들이 주로 외곽에 서 있네.

 

위의 그림은 내가 직접 제작한 안성의 12산성 위치도다. 안성의 12산성들이 골고루 퍼져있다. 물론 보개면, 삼죽면, 대덕면, 고삼면, 원곡면 등엔 없다.

 

사진으로 봐도 산성들이 안성을 포근히 감싸면서 안성을 지키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예외가 있다면 원곡면이 외곽에 있으면서, 산성이 없다는 것과 안성1동이 중심부에 있으면서 산성이 있다는 것이다.

 

안성의 12산성이 크게 3구역?

 

위의 위치도를 자세히 보면 크게 3구역으로 나눠진다. 양성면(무양산성, 고성산성)을 중심으로한 공도읍(진사리산성, 만정리토성)이 한 구역이고, 죽산면(죽주산성, 칠현산성)을 중심으로 한 일죽면(망이산성)이 한 구역이며, 안성1동(비봉산성)을 중심으로 한 미양면(진재봉산성)과 서운면(서운산성)과 금광면(금광산성, 상중리산성) 등이 한 구역이다. 왜 3구역일까.

 

그렇다. 12장(안성이 죽산보다 작을 때도 있었네)에서 보았듯이 안성은 안성군과 양성군과 죽산군이 1914년에 하나로 합쳐서 된 곳이다. 삼국시대엔 양성군은 사복홀, 죽산군은 개차산군, 안성군은 내혜홀이었다.

 

그러고 보면 3개의 군이 합쳐서 하나가 된 안성은 엄청난 문화의 축복을 받은 셈이다. 20장(이런말 들어봤나 교육의 도시 안성)에서처럼 향교도 셋 이고 서원도 셋이니까 말이다.

 

“안성시민여러분, 산성에 신경 좀 써야겠어유”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 있는 성은 죽주산성이다.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산성은 서운산성과 망이산성이다. 위의 표에서 보면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3개의 산성이다. 나머지 산성들은 그 터가 남아 있고, 돌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들이다. 그나마 진사리산성과 만정리토성은 개발로 인해 터 자체가 없어졌다. 이 좋은 자산을 복원해야지 않을까.

 

다시 안성이다.

 

26장(안성역, 도대체 어디 있었던 겨)에서부터는 숨 가쁘게 안성의 저항역사로 달려왔다. 이런 당신과 나에게 ‘다시 안성이다’란 메시지로 위로하고자 한다. 무슨 이야기냐고?

 

안성에 있는 산성들이 모두 12개다. 물론 내혜홀 시절부터 그런 건 아니다. 어찌됐든 1914년부터 12개의 산성을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12란 숫자가 무엇을 의미할까. 1년은 12달, 벽시계의 숫자 12개, 예수의 제자 12명, 띠를 뜻하는 12간지와 12동물 등이 그것이다.

 

숫자 12는 우주의 온전한 생명과 이치를 뜻한다. 12는 불완전함이 아니라 완전함을 말한다. 12는 불균형이 아니라 균형을 뜻한다. 12는 불안이 아니라 평안을 표시한다. 12는 불화가 아니라 평화를 말해준다. 우리 안성이 괜히 PC가 아니다.

 

Hi, Peaceful Castle!


[덧붙이는 글]
저자 송상호는 안성에 이사 온 지 20년차다. 2001년 일죽에서 ‘더아모의집(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집)’을 열었으나, 텃새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세 번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2005년부터 안성신문 등 각종 신문에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금광면 양지편마을에서 마을주민과 어울려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19금을 금하라> 유심 | 2018.10.19, <더불어 바이러스> 유심 | 2017.01.18, <그래도 종교가 희망이다> 유심 | 2016.05.31, <모든 종교는 구라다> 개정판, 유심 | 2015.08.31, <당신의 결혼은 안녕하십니까> 유심 | 2015.08.31, <자녀 독립 만세> 삼인 | 2013.03.19,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 겨> 자리 | 2012.05.07, <우리 아이 절대 교회 보내지 마라> 자리 | 2011.07.20, <예수의 콤플렉스> 삼인 | 2011.06.30., <학교시대는 끝났다> 신인문사 | 2010.07.26, <모든 종교는 구라다> 자리 | 2009.06.30, <문명 패러독스> 인물과사상사 | 2008.12.26 등 총 11권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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