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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1-29 17: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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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골짜기에 위치한 미리내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가 병오(1846년)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교명 안드레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고(高) 우르술라,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미리내는 본래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이다. 따라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종교탄압 속에서도 신앙심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 들어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주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며 살았던 곳이다.


이 성지에 미리내 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것 때문이었다. 26세의 나이에 생을 마친 성 김대건의 일생은 짧았으나 정든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고 낯선 이국 땅에서 선진 서구 문명에 정진하기 10개 성상. 그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최초의 방인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그는 한국 천주교회의 거목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김 신부는 형장에서도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최후의 시각이 다가왔으니 여러분은 나의 말을 잘 들으시오. 내가 외국 사람과 교제한 것은 오직 우리 교(敎)를 위하고 우리 천주를 위함이었으며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영보를 얻으려거든 천주교를 믿으시오." 마침내 희광이의 칼을 대하고서도 김 신부는 태연하게 "이 모양으로 있으면 칼로 치기 쉽겠느냐?"고 묻고 "자, 준비가 되었으니 쳐라."하고 말했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 신부의 경우 장례마저 막아 참수된 자리에 묻고 파수를 두어 지켰다. 하지만 죽음을 피해 살아 남은 신자들은 이를 그대로 둘 수 없었고 그들 중 한 사람인 이민식(1829-1921년)은 파수의 눈을 피해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후 김 신부의 시신을 빼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등에 지고 험한 산길을 틈타 1백50리 길을 밤에만 걸어 일 주일이 되는 날 자신의 고향인 미리내에 도착했다. 자신의 선산에 김대건 신부의 묘를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보살피던 그는 그로부터 7년 후 페레올 주교가 선종함에 따라 주교의 유언대로 그를 김 신부의 옆자리에 안장했다.


그 무렵 김 신부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도 비극적인 처지에서 숨을 거둔다. 7년 사이로 남편과 아들을 여의고 이집 저집으로 문전 걸식을 하다시피 한 눈물겨운 생애였던 것이다. 이민식은 고 우르술라도 김대건 신부의 묘 옆에 나란히 모셔 생전에 함께 있지 못한 한을 위로한다. 그리고 미리내의 오늘을 있게 한 당사자인 이민식 자신도 92세까지 장수하다가 죽어서 김 신부 곁에 묻혔다.


미리내는 1883년 공소가 설치됐다가 3년 뒤인 1886년 본당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은 지난 1972년부터 시작됐다. 성모 성심 수도회와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을 비롯해 주차장 시설, 김대건 신부 동상, 피정의 집 등이 완공됐다.


1980년 들어서는 경당 옆에 3만 평 규모로 광장을 확장하고 미리내 성당에서 경당까지 길 옆에 14처 조각을 세웠고 1987년부터 1989년까지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경당에는 현재 모두 여섯 분의 묘소와 함께 김 신부의 하악골(아래턱뼈)을 모셨다. 다른 유해는 가톨릭 대학교 신학 대학(성신 교정) 성당 안에 안치돼 있다.


김 신부의 묘 역에는 한국 천주교의 3대 주교인 페레올 주교님과 미리내의 첫 주임신부인 강도구 신부, 3대 박말구 신부 등의 유해가 석관 속에 안치되어 있다. 연중 순례객이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 는 물론 비신자들도 많이 참배하여 기도를 올려서 마음의 평화와 영혼의 위안을 받고 돌아가는 곳이다.


103위 시성기념성당이 1991년에 완공되었는데, 제대에는 김대건신부님의 비골(종아리뼈)이 모셔 져 있고, 2층에는 박해당시의 성구형틀이 전시되어 있다. 


성당 앞마당에서 보이는 성모상을 지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해 게쎄마니 동산을 꾸며 놓았는데 이는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바치는 예수, 그와 반대로 잠에 곯아떨어진 제자들의 모습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둔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오른쪽 등성이로는 수원 교구 성직자 묘원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위편으로는 18위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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