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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13 08:02:37
  • 수정 2022-04-13 09: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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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봄이 왔나? 했는데 여름이 오고 있다. 이번 봄은 애드리브처럼 왔다. 호미질 몇 번 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술보다 애드리브처럼 온 봄을 마신 게지. 누가 부르는지 금방 갈 태세다. 뒤꼍 담장 위에 들고양이 한 마리가 아슬아슬하게 앉아 졸고 있다.


다문다문 복숭아 꽃잎이 떨어지는데 눈을 뜨지 않는다. 떨어지는 복숭아 꽃잎도 담장 위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도 아슬아슬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니,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아슬아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안에서는 집고양이가 뒤주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른 아침에는 새소리가 시끄럽다. 본능적으로 새들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한 이 시각에 바라보는 이유는 뭘까? 너도 담장 위에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는 거니? 또 다른 나 인양 고양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혹시 떨어지는 복숭아 꽃잎을 너도 보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 꽃잎이 떨어지는 건 떨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떨어지는 순간 지금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양이를 불렀다. 꼬리를 툭 치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어제저녁에는 딸들이 무적이 생일을 이야기했다. 우리 집에 온 날을 생일로 한다며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날짜를 잊었다. 사월 24일, 음력으로 3월 12일, 생부의 제삿날이기도 한 날이 막내의 생일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할 뿐.


“엄마, 무적이 생일선물 뭘 사 줄 거에요?”


“무적이 선물? 무적이가 선물인데.”


마당에 버려져 울고 있던 무적이, 어떻게 할 줄 몰라 다시 들어왔다가 나가보면 코딱지만 한 것이 결사적으로 배밀이 이동을 했다. 위험에 노출된 것이 불안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살려달라고 구조요청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죽을힘을 다했다.


딱해서 나는 아무것도 못 하고 들락날락하다가 딸들에게 고양이 구조요청을 했다. 그날로 무적이는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큰딸이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무적이라는 이름은 너무 작아서 곧 죽을 것 같아 무적의 용사로 살아야 한다고 딸들이 무적이라고 지었다. 그러니까 무적이는 버림받은 들고양이 새끼다.


무적이가 선물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니까 딸들이 입을 삐죽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랑을 가장 많이 쏟아준 것은 딸들인데 무적이는 내 앞에서 애교를 제일 많이 부린다. 큰딸은 질투하기도 하고 무적이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어미 노릇을 한 것은 큰딸인데 무적이가 왜 그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인정머리 없는 스타일의 나를 최고로 쳐주는 무적이에게 나도 흔들렸다. 이제는 내가 무적이에게 애교를 부리는 정도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뒤주에 앉아서 사색하는 고양이, 무적이 옆에서 나도 팔짱을 끼고 앉았다. 버림받은 고양이라는 무적이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온 선물로 환치한다. 사십이 넘어 낳은 막내딸을 나를 키우지 못한 생부가 나에게 준 선물로 환치했듯이 말이다.


졸고 있던 고양이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복숭아 꽃잎은 여전히 바람에 날고 있다. 떨어지는 꽃잎의 속도로 봄이 떨어지고 있다. 오늘이 이렇게 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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