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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4-27 07:54:03
  • 수정 2022-05-03 2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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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뒤꼍에 하얀 민들레가 피었다. 홀씨의 정체는 담장 넘어 진선이 할머니가 가꾸던 민들레다.


하얀 민들레가 토종이라며 가꾸던 진선이 할머니는 매일 주간 보호센터 차를 타고 놀러 간다. 하얀 민들레가 진선이 할머니의 안부를 물을 차례이나 홀씨를 날려 우리 집 담을 넘어와 내게 말을 건다. 여느 풀과 같은 대우로 뽑아내려다가 그냥 두기로 한다. 하얀 민들레 꽃잎에 겹겹이 배인 외로움은 진선이 할머니 손등에 패인 주름으로 겹친다.


외로움도 연대를 하는가. 한 포기가 아닌데도 보이는 저 절박한 외로움이라니… 진선네 빈 대문간에서 바람이 휭 하고 나온다. 풀 속에 섞였으나 풀이 아니라고 보니 하얀 민들레는 더욱 도드라진다.


마당에 풀은 또 나왔다. 벌써 세 번이나 뽑았는데도 말이다. 풀의 종류는 해마다 그 놈이 그 놈이다. 괭이밥풀, 개망초와 가끔 작은 꽃밭에서 자라던 꽃의 싹이 올라온다. 곱게 보고 살 수가 없다.


너와 나는 무슨 인연이기에 내 마당에 싹을 틔우고 내 손에 제거되는가. 나로서는 이 과정이 유쾌하지 않아 어떻게 하면 풀이 나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아예 나지 않게는 불가능할 터이니 풀이 싹을 틔우기 불편하게라도 만들고 싶다. 비단 안마당뿐만이 아니다. 집 주변이 모두 풀의 행락이 가관이다.


나도 풀과 함께 즐거우면 좋으련만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거기다 잠시만 방심하면 풀은 오히려 나를 제압한다. 당하지 뭐, 하기에는 나도 성질이 있으니 묘책이 필요하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바깥마당 한쪽에 있던 비닐하우스를 해체했다. 이웃의 편의를 생각해야 했기에 위치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문제가 아닌데 나에게는 다른 복병이 앞을 가렸다. 비닐하우스가 있던 저 자리에 나는 풀은 어쩌란 말인가. 제초제를 남용할 마음은 더욱더 없으니 난감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뭐 하시게요? 곡괭이로 파 드릴까요? 관리기를 가져와 갈아드릴까요?”


부단히 삽질을 하는 내게 남국이네 집터에 이사 온 새 이웃인 아저씨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이는 조금 전에 우리 토종부추를 분양해 갔다. 부추는 한 번 심으면 대대손손 먹을 수 있는 채소다. 알뿌리를 자꾸 나눠 자리를 잡아줘야 질이 좋아진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 했다.

“아, 아니에요. 비닐하우스 있던 자리인데 그냥 두면 큰일 나요.”


초승달을 닮은 눈웃음을 웃으며 도우려는 모습에 나도 마음이 가깝게 다가갔다.


“풀, 풀이 문제예요. 그늘을 만들면 덜 나올 것 같아서요. 나무를 심으려고요. 괜찮아요. 저도 삽질 잘해요.”


초승달 같은 눈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나도 웃었다. 그러다가 고추밭 이랑 만들 일이 생각나 도움을 청했다. 날라리 농부인 우리는 기계가 없다.


운동 삼아 하려던 일이 한 시간 남짓 끝이 났다. 새 이웃 아저씨와 남편이 한 조가 되어 빠르게 처리했다. 나의 풀에 대한 신념은 소통이라는 다른 이념을 생성했다. 삽질의 끝은 단감나무와 대추나무가 곧게 서는 자세로 끝이 났다.


묘목을 파는 이의 말에 의하면 단감나무에서 내년에는 단감이 달린다고 했다. 오랜만에 설렌다. 나는 왼손은 허리에 대고 오른손은 땅을 찍은 삽을 잡고 나무처럼 곧게 섰다. 노모는 하늘에서 나를 볼 텐데 절친이었던 진선이 할머니를 태운 주간 보호센터 차가 나를 지나서 할머니 집으로 올라간다. 하얀 민들레에게 가는 나비처럼 팔랑팔랑…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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