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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5-27 07: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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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한련화를 두 포기 심었다. 화원에서 샀는데 이미 꽃이 두어 송이 피어 있었다.


비좁은 화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대로 있으니 꽃과 잎이 피곤해 보였다. 몇 개의 잎은 누렇게 떡잎이 지기 시작했다. 흙에 옮겨 심으면 싱싱해질 텐데…

 

어련히 화원에서 잘 보살필까마는 나는 저것들을 흙에 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더덕이 올라가고 있는 앞턱에 두 포기를 심었다.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보이는 곳이고 부엌에서 고개만 돌리면 보이니 명당이다. 여기서 명당이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시각적 입장일 뿐이다.


심고 떡잎을 따고 물을 주니 잎과 꽃은 싱싱하게 어깨를 폈다. 꽃은 꽃이고 잎은 잎인 양, 서로가 아니고 따로인 양 우쭐했다. 싱싱하게 올라오는 꽃과 잎을 보고 나는 내 마음이 싱싱해지는 것을 느낀다. 피어 있는 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싱싱해지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면밀히 살피는 것은 꽃과 잎이 아니라 나의 의지다.

 

꽃과 잎을 통해 내 의지의 흐름을 본다. 그러다가 ‘저들에게도 의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문다. 하다못해 한련화 옆에 놓인 돌에게도 의지는 있다. 낮은 단계의 의지도 의지다. 

   

자괴감을 느끼는 고등동물이라 일컫는 인간인 나는 그래서 고통이다. 꽃과 잎은 우쭐한 적도 피곤해한 적도 없는데 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기를 “세상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대로 존재한다.”라고 했다. 한련화 두 포기 심어놓고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생각에 빠졌다.

 

“아빠! 저 내일 아침 대용으로 먹을 건데요.”

 

순간 떠오른 말은 ‘어머! 쟤 봐라!’라는 말이었다. 개수대에서 저녁준비를 하면서 나의 촉은 딸의 행동을 주시했다.

 

큰딸은 퇴근하면서 자색고구마 떡이라나 뭐라나를 사 들고 왔다. 나는 외출했다가 들어와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주전부리를 즐기지 않는 체질이라 관심이 없었다. 나의 반대성향인 남편은 먹을 것이 앞에 있으면 일단 먹고 보는 사람이다.

 

아빠가 그것 좀 먹었다고 접시에 몇 개 내놓고 냉장고에 챙겨두는 꼴이라니… 보는 내 마음은 섭섭했다. 남편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느라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다.


내 마음속에서는 별별 말이 다 오갔다. 부모 먹으라고 사다 줘도 시원찮은데,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부모 마음을 생각할 나이가 차고도 넘치는데…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말들을 꿀꺽꿀꺽 삼켰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도 않았다.


“야야야야, 다 넣어뒀다가 너나 먹어.”


소심하게 한마디만 했다. 말하면 서로가 치사해질 것 같았다. 한편 그렇게 하면 부모 마음이 섭섭해진다는 마음을 알리고 싶은데 늙은이가 된 것 같아 허전했다.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니 지금 생각을 정리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한련화를 보지만 한련화를 보는 것은 나의 의지이듯 큰딸의 마음을 그대로 보면 그만인 것이다. 섭섭함이니, 부모이니, 이기주의에 토를 달아 고통에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련화 두 포기가 서리가 내리는 날까지 내 마음에 예술작품으로 앉아있을 것 같다. 매일 매일 다른 모습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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