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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15 09:32:25
  • 수정 2022-07-04 14: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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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가물어도 이렇게 가물 수가 있나. 호스를 연결해 물을 줘도 흙은 금방 보송보송해진다.


고추에 진딧물이 끼고 한낮에는 오이잎이 시들시들하다. 가지잎을 화초용 전지가위로 똑똑 잘랐다. 잎이 나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잘라내면 가지가 잘 열린단다. 영리한 인간의 행위를 하면서 내 생각은 다른 데에 가 있다.


씨앗에서 모종이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자리를 잡았으니 손바닥만 한 텃밭이 어색하지 않을 텐데 마치 그것이 불만인 양 나는 자꾸 자라는 이파리를 잘라낸다. 가지는 낯선 것이 싫은 것처럼 자르면 나오고 자르면 나온다. 오늘은 낯설지 않은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지에게 말하고 싶다.


자르면 나오고 자르면 나오는 가지잎이 있다면 그런 것이 지루해 사람은 여행한다. 제주여행을 간다고 큰딸은 수선을 떨었다. 가지잎 같은 하루하루에서 벗어난다니 새파란 청춘은 설레고 즐거워 어제보다 오늘의 색깔이 밝고 투명했다.


나의 오늘도 덩달아 밝아지고 있었다. 낯선 곳을 찾아간다고 나간 큰딸의 전화는 어미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려줬다.


엄마, 사고 났어요, 아빠가 클랙슨을 엄청 눌렀는데도 그냥 와서 부딪혔어요.”


설레고 즐거워 통통 튀던 큰딸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곧 터질 것 같다. ‘사고라는 단어에 일단 가슴이 내려앉는다. 자식의 목소리니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디서?”


집에서 나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동네일 것이 분명하다. 목소리로 보아 다친 것은 아닌 것 같고 순간, 마을 사람과의 사고가 아니기를 빌었다. 사고에 대한 설명을 흔히 표현하는, 따발총처럼 쏘았다. 마을 아저씨와의 접촉 사고였다.


아저씨가 뒤도 보지 않고 후진을 했단다. 당연히 클랙슨을 급하고 강하게 여러 번 눌렀으나 소용없었단다. 아저씨가 나오더니 클랙슨 소리를 듣지 못했다며 난청임을 말했다는 것이다. 아뿔싸! 내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골길에서의 운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늘 이야기했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놀라며 목격한 일을 이야기 해줬다. 시골 분들은 운전하며 당신들의 논과 밭을 본다. 속도를 낮추고 오더라도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데 가끔 그렇게 한눈을 파는 것이다.


보다가 안 되어서 내가 급하게 클랙슨을 누르면 깜짝 놀라며 미안해한다. 간혹 청력이 약한 분도 있는데 바로 옆에 이웃이라면 알지만 좀 떨어진 이웃이라면 잘 모른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일단 그냥 왔는데 할아버지한테 말해야 해요.”


아저씨의 내력을 너무나 소상히 알고 있는데 아저씨 또한 나의 내력을 잘 아는 분인데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큰 사고는 아니니 다행이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이 운전한다는 것이다.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차 범퍼 좀 찌그러졌는데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내 차와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른다. 한참을 고민했다. 이야기해야 아저씨를 위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섰다. 만약에 운전을 하셔야 한다면 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지 잎을 따던 화초 전지용 가위를 놓고 전화했다.


아저씨! 영미인데요.”


이잉, 그려, 그렇지않아도 내가 가봐야 하나 생각하던 차여,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서 실수했어, 거기 관장 물을 보다가 그 물만 보고 후진을 한 거여, 내가 잘못한 거지, 땀이 나서 보청기를 뺐지 뭐여, 차 고치고 말 혀, 신랑한테 미안하다고 그려 잉?”


아저씨도 놀라셨고 우리도 놀랐지요, 다행이셔요, 근데 아저씨! 보청기 빼고 운전하시면 절대 안 되셔요, 내가 미치겠다. 정말.”


아저씨는 멋쩍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한 웃음을 웃었다. 내가 미치겠다고 표현을 한 것은 내가 자란 마을이니 아저씨의 청소년 시절은 물론이고 신혼의 신랑이었던 것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저씨만큼 나도 청춘이 아니니 미치겠다는 표현으로 일축했다.


고향에서 늙어간다는 것은 좋은 팔자가 아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미륵처럼 게슴츠레 눈뜨고 바라볼 준비를 해야 가능한 것은 아닌지미륵까지 들먹이며 거창한 것 같지만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이 왜 자꾸 낯선 곳을 찾아 떠나는지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남은 커다란 가지잎 하나를 따며 말을 건넸다.


네가 나보다 깊다.”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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