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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6-27 08:12:34
  • 수정 2022-07-07 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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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오이 50, 양조식초 900ml, 소금 1.5kg, 설탕 1,5kg 비율로 하면 돼'라고 했던 기억을 되살려 오이지 만들기에 도전했다.


입맛이 없으면 밥맛으로 먹으란 말도 있지만 더위에 개들도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 거리는 요즘 입맛이 없어 고민이다.


십년 넘게 유통 관련 일을 하고 있어 그날그날 물가, 시세 변동에 민감하다. 가격이 오른 물건의 가격표를 바꾸면서 크게는 이천 원 미만 차이로 오르는 숫자에 놀라 눈을 의심하기도 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회사별로 꼼꼼히 mg을 비교 하거나 세일품목, 원 플러스 원 제품 선호도가 높은 걸 느낀다.


고덕 신도시와 삼성반도체건설현장으로 변모하는 평택은 이제 예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가다 노동자 일자리는 많아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힘든 표정이다. ‘유도원이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술과 빵과 우유를 사러오는 퇴근길 발걸음을 바라보며 노가다인 내 인생의 빛 조율하는 일 또한 한결 부드러워진다.


알려준 황금레시피로 오이지를 담았으니 시간이 숙성해 줄 것이다. 꼬들꼬들 노르스름 잘 익은 오이지를 얇게 썰어 무치거나 냉국을 해도 좋을 훌륭한 반찬이 기대된다. 무장아찌무침, 가지찜과 가지냉국, 오이 미역냉국과 초무침, 애호박 새우젓 볶음, 햇감자 조림, 오이고추 된장무침, 알배기 배추와 상추에 강된장에 쌈 싸먹기 같은 여름나기 집밥 찬이 이렇게나 많은데 요리가 귀차니즘으로 바뀐 요즘 주부들 일상은 오늘 뭐 뭐해먹지가 하루하루 걱정이다.


오이 50개 이만 원이 지속되다가 천원이 떨어졌지만 작년에 비해 아직 비싼 가격이다. 하지만 더위를 시원하게 지켜줄 음식도 이만한 게 없다.


살아 계셨다면 올해 100세가 되셨을 생전 엄마 모습이 생각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퀴(심장)로 치면 다 닳았다는 의사선생님 비유는 담담했다. 잇몸에 살이 빠져 툭 내려앉은 틀니를 뺀 엄마 얼굴은 합죽이가 되었다.


그나마 한이 되지 않는 마음 가벼운 이유는 얼마동안 모시면서 잃어버린 엄마 입맛을 위해 별별 요리를 다해 바친 기억으로 위안을 삼는다. 아프면 누구나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다. 그건 죽음으로 가기 전 아픈 사람이 누리는 마지막 호사가 아닌가 싶지만 그마저 누리지 못 하는 현실이다.


찬밥에 물을 말아 꼬들거리는 식감에 행복을 즐긴다. 생전에 해드린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가득 채운 반찬이 한동안 내 입맛을 지켜줄 것이다.


사는 일은 동그랗게 모가 나지 않게 가야한다. 아삭하고 꼬들꼬들한 삶의 일들이 나를 이끌어 가는 동안 내 생의 여름은 건강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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