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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7-08 17: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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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 [이하 생략]

 

▲ 임동훈 넥스트팬지아(주) 대표이사

[임동훈의 녹색칼럼]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시들은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 시만큼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저 이름 하나 지어주고, 그 이름을 불러줬을 뿐인데, 아무것도 아닌 그 무언가는, 이름 하나로 인해 소중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인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의 성격, 특징, 외형 등을 잘 파악해야 그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려면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3년 전 어머니께서는 이사로 진급한 아들에게 생긴 집무실의 휑한 사진을 보시고는 스투키를 선물해 주셨다. 요즘 SNS를 보면 식물 집사와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연쇄살식마, 식물 저승사자, 식물 살인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해 자주 죽이는, 나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생을 덜어주고 건강을 챙겨주기 위해 물주기 등의 관리 노력은 최소화하면서도 공기정화 기능이 있는 스투키를 선물해 주신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이 식물과 사무실 동거가 시작되었고, 이제 만 3년이 되었다.

 

작년 7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했다. 10년이 넘는 직장 생활 마무리하는 날, 나는 영화 레옹에서처럼 식물 화분 하나 들고 회사를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했을 법도 한 데, 2년을 매일 같이 보아온 스투키가 옆에 있으니 든든했다. 다음 날 직장인이 아닌 회사 대표로 첫 출근을 할 때도 스투키와 함께 했다. 새로 얻은 사무실, 내 책상 위, 스투키는 한자리를 차지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니, 이전처럼 직원들과 부대낄 일이 많이 없어 사무실은 언제나 고요하기만 하다. 사무실에 존재하는 생명체라고는 나와 스투키뿐이다. 그러다 문득, 한 공간에 다른 생명체와 함께 있는 데, 그것도 2년을 함께 해왔는데, 이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민 끝에 스스로의 정체성을 기억하면서도 한국적인 특색을 가미한 툭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사무실에 출근할 때마다 툭희에게 인사를 건넸다. 툭희야 굿모닝!

 

김춘수의 시에서 말한 것처럼 정말 이름을 불러주니 하나의 존재가 되었고, 그제서야 툭희를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3년 전, 어머니께 인증샷을 보내주기 위해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 보니 많이 야위어 있었다. 탱탱했던 줄기는 야위어 주름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소중해져 버렸기 때문에 이전 식물들처럼 하늘나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제서야 스투키에 대해 영양제를 비롯한 관리 방법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관리를 해주니 야위었던 툭희는 다시 활력을 되찾고 통통해졌다.

 

실내식물과 반려식물은 비슷한 느낌이지만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스투키는 그저 실내식물이었지만 툭희는 소중한 반려식물인 것처럼.

 

반려식물은 친구나 가족과 같이 정서적인 교감과 위안을 얻는 식물이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로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 이외에도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식물은 40~50대에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MZ세대들 사이에서도 반려식물 트레드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대학내일20대 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 900명에게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56.1%)이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다고 답했다. 식물에 반려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MZ세대들의 식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도 모르게 집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식물 집사가 되었다. 창업을 하고, 몇 개월 동안 매출이 없어 힘들었던 시기에, 묵묵히 지켜봐 주고 응원을 보내 준 툭희는 이제 가족이다. 툭희 덕분에 회사는 40만불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툭희를 위한 고급 식물영양제 브랜드(메종드플란트)도 만들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반려식물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서적인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가족이 된 툭희에게 챙겨줘야 할 것들이 많지만 툭희가 나에게 주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그 노력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집에 식물이 있다면, 이름을 붙여보자! 식물이 없다면 이 기회에 관리가 쉬운 식물을 입양하여, 이름을 붙여주자! 이름을 불러주고 애착을 가지는 순간 반려식물이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반려식물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임동훈 넥스트팬지아(주) 대표이사. 평택대학원 국제물류학 석/박사. 창업사관학교 외부멘토. 국제 화장품 전시회 세미나 연사. 안성초/안청중/안법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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