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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3-28 0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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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하늘이 유난히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퇴근하는 습관이 있다.

 

쥐눈이콩처럼 콩콩 박힌 반짝이는 작은별이 눈에 띄면 잃어버린 세계라도 찾은 듯 기쁘다. 운이 좋으면 아주 작은 별까지 드니 집으로 가는 거리가 짧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별을 보면 그냥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면이 길어지는 밤 유년의 시간으로 돌아가면 초록빛 낡은 책상, 볼펜대에 끼운 몽당연필에 누런 깍두기 칸 공책과 그 애가 있던 1학년 교실이 보인다.

 

경북 상주 상산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손상호라는 이름의 얌전한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다. 가정형편을 공개적으로 조사하던 시절, 선생님이 텔레비전 있는 집 손들어봐, 전화기 있는 집 손들어봐.”등 세세한 질문을 던질 때마다 손을 들 일 한 번도 없었던 나와는 달리 그 애는 항목마다 매번 손을 드는 것이었다.

 

하루는 전화기를 실물로 보면서 전화 거는 방법과 받는 모습을 체험하고자(이미 부모와 합의가 되었겠지만) 상호네 집으로 가기 위해 운동장에 열을 맞추어 섰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당시 손드는 모양을 보면 전화기는 한 집만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부잣집 아들인데도 잘난 체 하지 않는 착하고 순한 듬직한 소년이었다.

 

그 시절은 한글을 떼고 입학하던 시절이 아닌 종합장에 사선이나 물결무늬부터 배우던 시기여서 네모 세모 동그라미 육각형 별모양을 다 익히고 나면 ㄱㄴㄷㄹ, 가나다라, 가갸거겨 아야어여 이런 순으로 진도가 나갔으니 원,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영악한 것이더냐.

 

별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고흐의 그림처럼 청정의 밤하늘은 코발트블루에 노란별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별을 그려본 적 없던 나로서는 난감했다. 무엇이든 이해력이 늦어 학습능력도 부진한 편이었고 수줍음 많은 성격에 나서는 적이 없는 존재감 없던 아이였다.

 

상호가 내 학습장에 삼각형을 그리고 그 위에 역삼각형을 올리니 별모양이 되었다. “, 별은 이렇게 그리면 참 쉬워.”라고 말한 그 말은 지금도 세상 어떤 말보다 다정하고 달콤한 경전이라 영원히 귓전에 맴돈다.

 

이런 게 사랑이었나. 학교생활은 즐거워야 한다. ‘나 때는 말이야’(지금은 라떼라며),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읽어도 가슴 설레고, 태극당 빵집에서 몰래 빵 먹는 일도 너무나 쫄깃한 시절이었는데.

 

학폭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더 글로리를 보면서 순수한 학생의 밝은 미래가 성인이 되어서도 잔혹하게 이양되어 파멸되는, 공포와 살벌함 수위 높아지는 현실이 학교란 사회악의 한 측면으로 반추되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바라보던 별빛은 결코 밝음의 소묘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지만 끔찍한 악몽을 견뎌온 주인공 문동은은 철저한 피해자였기에 자신이 정한 복수의 끝을 원한다. 원을 이루었어도 남긴 상처가 행복으로 회복될지는 모를 일이다.

 

오늘도 별이 한 두 개 보인다. 삼각형과 역삼각형을 포개어 별 그리는 법 스승이 되어준, 그리하여 어린 시절 첫사랑으로 남겨진 상호를 생각하니 빌빌 웃음이 솟는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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