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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5-25 08: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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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간월도 간월암에는 보호수인 250년 된 사철나무가 있다. 풍파를 견뎌온 세월 나무 등걸에서 느껴진다.

 

재개발을 벗어난 우리 동네 오래 된 연립주택 앞 작은 공터에는 제법 큰 나무들이 산다. 느티나무와 굽은 소나무, 고목의 능소화 꽃사과나무를 비롯해 제법 다양한 수종 사이로 두 그루 사철나무도 있다.

 

마을에 이렇게 큰 사철나무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생각하며, 지나던 길이 몇 해인지 모른다. 성인 몇이 둘러서도 어림없는 풍성한 몸체 안이 궁금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찼지만 지금처럼 잎이 무성한 오월이면 그 안의 비밀은 더욱 촘촘하고 완벽하게 유지된다. 어느 때는 부로 서서 잎과 가지를 살짝 들치는 시도를 해봤지만 나무는 쉽게 그만의 내밀한 시간 보여주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전 동네 가로수와 큰 나무들의 가지치기를 정리하는 작업이 있었다. 인도와 도로에 생길 위험 방지를 위한 일원 사업으로 많은 가지들이 기계에 잘려 툭툭 떨어져 내렸다. 이곳에 터를 잡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뻗을 가지들이 한순간에 운명이 갈리는 것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사철나무를 지날 때였다. 멀리서도 나무 앞 푸른 가지들이 바닥에 수북 쌓인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수직 단면으로 쳐진 상태였다. 마치 오래 기른 긴 머리가 잘려나간 것처럼 공허함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궁금해 하던 나무의 내밀한 안쪽조차 안중에 없었다. 가려진 것들의 드러남은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천천히 나무와 눈을 맞췄다. 손으로 잎과 가지를 만져주었다. “세상에나”,순간 심장이 멎을 경이로움과 맞닥였다. 좌측 가지 안쪽 멧비둘기가 둥지에 앉아 알을 품고 있었다.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던 비둘기집이 누군가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보일 불안한 상황이었다. 겨우 몇 잎에 가려진 둥지에서 비둘기는 미동도 않고 허둥되지도 않았다. 불안한 건 오히려 지켜보는 나였다.

 

출퇴근길 사철나무 곁을 오가며 비둘기의 안위를 살핀다, “우리 오늘부터 일일이야라며 알 품느라 고생 많다고 위로도 전한다. 한 번도 둥지를 떠나있는 모습을 못 보았으니 무얼 먹기라도 하는지 걱정이 된다.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 번갈아 앉으며 체온을 드리우는 모성은 모든 어미의 숙명이리라.


우리와 친숙한 비둘기가 이곳저곳에서 운다. ‘구구가가란 절절한 울음의 속성을 타고드니 사랑의 일 또한 생명 연속을 구가하는 일이다. 시간이가면 사철나무는 다시 달처럼 찰 것이고 둥지는 비어 새로운 기운으로 팽대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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