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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03 10:5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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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숙 수필가

[김선숙의 AESTHETIC] 서랍과 옷장에 입지도 않는 옷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네모난 상자 속에도 무엇인가 수북이 담겨있다. 모두 사연 있는 것이라 버릴 수 없고 그렇다고 다시 꺼내 입거나 들춰보는 일도 어쩌다 한 번 있을까 싶은데 꽤 많은 것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가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세 아이 임신 수첩, 육아일기, 코더에 담았던 동영상을 다시 CD로 구워놓은 것, 세 아이가 아기 때부터 삐뚤빼뚤 써서 주었던 편지와 메모, 거기에 아이들의 일기장과 교복, 배냇저고리까지.

 

나중 아이들이 크면 작은 방 하나에 아이들 물건 전시하여 추억을 공유하고 싶어서 못 버리고 가지고 있다. 교복 같은 경우는 가끔 한 번씩 세탁까지 해가면서. 내 추억보다 아이들과의 추억이 너무 소중해서 모두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도 잘 모르면서 엄마가 되었고 세 아이를 키웠다. 그러니 얼마나 어설프고 걱정스럽고 시행착오가 많았을까. 그래도 엄마로 살아온 시간 들이 소중하고 대견했으며 내 전부가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기에 그들의 지난 시간 어느 한순간도 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그 시간이 모두 내 시간이기도 했으니까.

 

여기저기 모아져 있는 추억들을 정리하려고 꺼내놓고 보니 이래서 못 버리고 저래서 못 버리고 이유 있는 핑계를 대면서 다시 주섬주섬 담아둔다. 언제 다시 꺼내놓고 아이들과 볼 날이 있을까 기약도 없으면서 말이다.

 

남편이 옷가지들을 정리했다.

수십 년째 못 버리고 있는 옷을 정리하자 했는데 아직 까지 못 버리고 있다가 얼마 전 의류 수집함에 버렸다. 그걸 버려놓고 얼마나 우울해하던지.

 

오랫동안 닳지도 않은 옷을 수십년 째 입지도 않으면서 못 버리고 있었던 건지.

복잡한 집 구석구석에 쌓아 놓고 못 버리다 이제야 버릴 생각을 한 건지.

내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떠나보냈으면서 이걸 못 버리고 끌어안고 살았을까 싶다.”

 

장모님이 사주신 것, 첫 월급 타서 샀던 것, 누님이 스웨터 공장 할 때 선물했던 것 등을 말하며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닌 사랑하는 그분들도 보냈으면서 이 옷가지가 뭐라고 못 버리고 있었는지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분들이 아직 나와 같이 있는 듯 위로받았겠지 싶다.

 

오래된 것, 낡은 것, 추억 돋는 모든 것은 우리의 기억에 두도록 하자. 하나둘씩 치우고 버리면 서운하고 아쉽고 슬프겠지만 우리 기억에 두고 살아가면서 힘들 때 서글플 때 그 기억을 꺼내 힘을 얻고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하자. 과거 없이 현재나 미래가 없지만 지나버린 과거를 추억하느라 온 집안을 꽉꽉 채워놓고 살 일은 아닌 것 같다.

 

조금씩 덜어내고 내려놓고 나누고 필요한 곳에 보내주고 그러면서 내 추억을 조금씩 가볍게 하기로 하자. 내 기억에 좋았던 추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도 좋은 추억이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며 다시 들춰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억은 나만의 추억으로 족하다.

 

가볍게 단촐하게 한결 넓어진 공간에서 현재와 미래를 꿈꾸며 살면 좋겠다.

나도 추억 돋는 나의 낡은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해야겠다. 그래야 또 다른 추억 돋는 일들이 생길테니까.


[덧붙이는 글]
수필가, 풀꽃소리시낭송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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