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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듣다) “선아씨의 자립, 안성지역사람들이 함께해요” - ‘안성지역 정신재활 자립인 1호’ 최선아씨와 이웃들.
  • 기사등록 2018-06-26 06: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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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선아가 자기 집에서 한턱 쏜대요. 놀러오세요”

 

▲ 6월 24일 선아씨의 원룸에서 필자를 포함한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24일 박진숙 복지사(안성 정신사회복귀시설 동그라미)의 전화를 받고, 그날 바로 점심을 먹으러 최선아(32세, 안성최초 사회복귀시설자립인 1호)씨 집에 모였다. 박진숙 사회복지사, 박복지사의 친구 정현수씨, 나의 아내 강명희씨, 주인공 최선아씨, 그리고 나까지 6명이 모였다.

 

박진숙씨가 사회복지사가 된 것도 선아씨 덕분.

 

사실 이 조합은 처음이 아니어서, 만나자마자 수다의 봇물이 터졌다. 서로의 근황부터 기분조사까지. 특히나 오늘의 주인공 선아씨의 일상과 칭찬세례가 돋보인다. 신명나게 웃고 떠들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오늘날 세상에 글로 튀어 나오게 되었다.

 

‘쉽지 않은 출발을 하는 선아씨에겐 힘이 되고, 이런 길을 가려고 하나 두려워서 시작을 못하는 이들에겐 용기를 북돋아 보자’

 

도대체 이런 길(?)이 무얼까. 그동안 대중매체를 통해 지체장애인이 자립을 위해 어떤 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었다. 선아씨는 조금 다른 경우다. 그녀는 ‘정신적 장애(불안증과 우울증)’가 있는 여성이다.

 

선아씨는 사실 몇 년 전, 안성지역에서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여성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그녀를 보듬으려고 한 건, 안성시 서부무한돌봄센터(당시 센터장 유원근)였다. 센터에서 그녀를 케어하고 있을 때, 아무 연고도 없던 박진숙 씨가(당시 주부, 현재 사회복지사)가 솔선수범해서, 선아씨를 동그라미(안성 정신사회복귀시설)로 입소시켰다. 입소만 시킨 게 아니라 그녀를 지금까지도 하나같이 케어 하는 친구가 되었다.

 

사실, 박진숙씨가 사회복지사가 된 것도, 동그라미 담당 복지사가 된 것도, 순전히 선아씨를 케어 하다가 생긴 일이다. 선아씨의 출연이 진숙씨가 복지사가 되도록 삶의 전환기를 만들어 줬으니, 성경구절대로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경우다.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경우라 하겠다.

 

‘안성 정신재활자립인 1호’ 뒤에 ‘이모 박진숙’이 있었다.

 

2014년 시설에 입소한 선아씨는 우여곡절 끝에 올해 초 대림동산에 원룸을 얻어 자립의 문을 열었다. 시설 이름이 ‘정신사회복귀시설’인만큼 원생의 자립이 시설이 생긴 원초적 목적이 아니었던가. 시설 입장에선 성공사례라 하겠다. 물론 선아씨가 이렇게 결정하고 움직이는 데는, 이모(선아씨는 박진숙 씨를 이모라고 부른다)의 끈질긴 동행이 있었다.

 

선아씨의 자립은 안성의 정신사회복귀시설에 있는 원생으로선 안성최초다. 소위 ‘안성 1호’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아씨의 모든 족적은 안성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되어버렸다. 선아씨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되는 셈이다.

 

“선아의 자립을 이야기 하고자 하면,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며 진숙씨가 꼭 인터뷰해야 할 한 사람을 소개했다. 안성의 C물류센터(중앙대 정문) 오영미 주임(57세)이 바로 그 사람이다. 2년 전, 그 직장에 입사한 선아씨를 직장인으로 변화시킨 사람이다.

 

“선아를 처음 봤을 땐,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인간관계도 시원시원하게 못 맺고, 많이 안타까웠다.”

 

“이모는 뒤에서 밀어주고, 대모는 앞에서 끌어주고”

 

▲ ‘안성 정신재활자립인 1호’ 선아씨의 작업장면

오주임은 선아씨가 시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맘이 아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선아씨를 이 직장에 적응하게 해서 ‘사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오주임도 선아씨와 동갑인 자녀가 있다. ‘좀 더 큰’ 모성애가 발동한 듯싶다.

 

오주임의 트레이닝은 초반 6개월 동안 강하게 이루어졌다. 못한다고, 힘들다고 엄살 피우는 선아씨를, 당근과 채찍을 써가며 강한 훈련을 시켰다. 잘할 땐 칭찬을 하고, 못 할 땐 야단을 쳐서 가르쳤다.

 

사실 그 직장에 선아씨만 있는 게 아니다. 오주임이 조율해야할 많은 식구들이 있다. 때론 선아씨의 동료들이 “선아씨 때문에 작업이 늦어지거나 실수가 있다”고 항의를 해올 땐, “손해를 봐도 회사가 본다. 그런 문제는 회사가 책임 질 문제니까, 선아와 함께 해달라”며, 오주임은 직원들을 다독였다. 회사의 책임이라고 말한 부분은 결코 쉽지 않은 조율 처방이지 않은가.

 

“선아라고 특별하게 봐 준 건 아니다. 선아 말고도 다른 청년들(불우하고 소외된)이 우리 회사에 종종 일하러온다. 항상 내 방식은 그래왔다”며 웃는 오주임에게서 ‘대모의 포스’가 풍기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앞으로 좀 더 가르쳐서 이 직장에서 제 역할을 잘하도록 할 예정이다. 물론 다른 직장으로 옮기더라도 무엇이든 잘 해내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

 

주인공 선아씨는 오늘도 자립을 향해 성큼성큼.

 

선아씨의 직장동료들도 2여 년 세월을 통해 변해가는 선아씨를 보며 놀라고 있다. 무엇보다 오주임이 바라 본 선아씨의 처음과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선아씨의 표정부터 달라졌단다.

 

▲ 선아씨의 작업장을 김보라 전 경기도의원이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주어진 일만큼은 누구보다 잘하고 많이 알아야 당당해진다. 선아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힘써 왔다. 본인이 잘 따라주었고, 잘해내고 있다.”

 

인터뷰 내내 “선아가 잘해서 그렇다. 선아가 잘 따라 주었다”는 말을 하는 오주임, 한사코 “나의 얼굴은 안 나와도 좋으니, 선아에게 도움 되게 글을 써 달라”는 오주임에게서, ‘대모’의 향기는 또 한 번 발한다.

 

그러고 보니 ‘안성최초 정신재활자립인 1호’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이모 박진숙’씨와 ‘대모 오영미’씨 등과 같은 수많은 안성지역사람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선다”지만,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나서야”하지 않을까. 물론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은 없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립’의 핵심은 역시 ‘경제적 자립’일진대, 선아씨는 오늘도 따스한 사람들의 기운을 받아, 직장의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말도 못할 수많은 사연과 상처를 딛고 그녀는 세상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이런 그녀에게 당신의 박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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