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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반딧불 / 김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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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혼인 비행을 마치고
수컷은 바로 죽고
암컷도 산란 후 숨을 거두네요
삶의 정점을
종족보존을 위해
냉가슴 앓이, 찬 빛을 태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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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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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어느 저물녘 / 김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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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능으로 향한 오솔길에는
허물어져가는 널기와집이 한 채
겨우내 한 번도 발 들여놓은 적 없는
능의 장대한 그림자가 좁고 스산한 그 집의 ...
-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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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밝은 날은 아라홍련 / 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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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기도 하지
홍련과 백련을 거느리고 가야읍을 연분홍 향기로
채운다
함안연꽃테마파크 사이길
잎맥에 청아한 빛 가득한 채 발돋움한 ...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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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동백꽃 / 문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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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추운 겨울 어느 날
눈이 많이 오던 날
어머니께서 기침을 하시더니
각혈까지 쏟더니
백설 위에
빨간 꽃,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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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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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이름을 지우는 방식 / 김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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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스몄던 향, 선, 휘, 수,
개나리, 망초, 개별꽃, 괭이밥, 명자
그리고 봄을 타고 온 순한 맥박까지
온통 독백으로 간직하던 이름들.
분리되지 ...
-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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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보리밭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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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찰나의 시간에도
변함없이 지축을 뚫고 하늘을 연다
남풍은 동토(凍土)를 녹이고
햇살은 흙덩이를 잘개 부수더니
빗물은 땅속 잠자던 씨...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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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품으로 - 妙蓮 이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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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지 않아도 와 주었구나
산뜻한 흙내음 위로
모란이 행복의 깃발을 펄럭이는 5월의 뜰에
시인에게도 시의 역사가 시작된다
시대에 뒤떨어진
...
-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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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민들레 / 이 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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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길을 따라가면
환한 미소
봄날 노랗게 피었을 민들레꽃
짓밟힌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고통과 상처로
청춘의 꽃은 피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
-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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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막말 - 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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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말/ 정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
-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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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오후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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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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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박성명 발표한 대법관 13인에게 고함 - 김주대
- 너희들 고운 손 깨끗한 피부 다칠까봐땅 파고 농사짓는 일, 바닷바람에 살점 파먹히며 물고기 잡는 일, 공장 돌리는 일은 우리가 하였다. 영하 20도 굴뚝 꼭대...
- 20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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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천 - 천상병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나...
-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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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 201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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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길 1 - 윤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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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을 알고 있다.
찔레 새순을 먹던 산길과
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과
장마 진 뒤에, 아침 햇살처럼,
은피라미떼가 거...
- 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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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 / 이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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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을 향하여 정조준을 끝낸 화살을 띄운다
마지막- 이라는, 필생의 한 판 승부를 위하여
저 먼 하늘 끝으로 시위를 날린다
날아가는 일은 지금의 ...
-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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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질 - 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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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부터 빠듯이 세상에 밀려나온 나는 또 한번 나를 내 몸으로 세상 밖 저쪽으로 그렇게 밀어내고 싶다 그렇게 나가서 저 언덕을 아득히 걸어가는 ...
- 20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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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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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병(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플...
- 20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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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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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
-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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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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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
-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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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날에 우리는 - 김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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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날에 알게 되었다
슬픔에 묶여 있는 사람들의 느린 걸음걸이에 대하여
고요한 소용돌이에 대하여
줄을 풀고 떠나가는
때 이른 조난신...
- 2017-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