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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11-09 08:22:18
  • 수정 2022-04-13 07: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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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이 살아가는 구두병원, 백구두와 할아버지 가을 일상  


▲ 유영희 詩人.

백구두는 마트 옆, 구두병원 할아버지가 돌보는 화단냥이 이름이다. 이곳에서 여러 해 출산을 한 턱시도 나비의 손자라고 한다.

 

나비는 할아버지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거듭되는 잦은 출산과 고단한 길 위의 삶으로 심한 구내염과 피부병, 바이러스 장염인 범백, 영역 싸움으로 인한 과다 출혈과 상처로 죽음 위기까지 갔다.

 

다행히 할아버지와 주변 캣맘의 도움으로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쉽게 삶의 의지를 보이지 않던 나비에게 할아버지가 꾸준히 간식에 넣어 먹인 사랑의 묘약으로 회복된 후 이뤄진 TNR(중성화 수술)수술을 거쳐, 회복의 시간을 지나 지금 여섯 번째 묘생 낭만가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을 살려준 할아버지에게 발라당 애교를 부려 기쁨을 줄 재간은 없고, 그저 부비부비 다리사이를 스쳐 지나는 것으로 감사함 표시하며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데려온 아이가 백구두이다.

 

생후 몇 개월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몸, 제대로 먹지 못 하고 깡마른 눈꼽 낀 눈, 범백과 각종 병에 살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또 한번 용기를 내어 고양이 간병에 나섰다. 따뜻하게 적신 수건으로 눈을 맛사지 해주며 주사기로 강제 급여와 약을 먹여 간신히 살려냈다.

 

생업인 구두수선과 칼갈이보다 하나의 어린 생명을 살리는 일이 다리 불편하신 할아버지에겐 무엇보다 가장 몰두해야 할 생명에 대한 작은 조공이었다. 누가 시켜서는 할 수 없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하신 것이다. 혹여, 자신이 돌 본 나비가 간절히 보낸 무언의 눈빛을 읽어 내려 실천한 꼼꼼한 사랑의 내공은 아니었을까.

 

백구두의 재롱과 도도함과 귀여움은 지난 봄 산수유가 피기 전 이른 봄부터 자라왔다. 노란 산수유에 올라 모델냥이가 되고, 쥐돌이 장난감을 흔들어 주는 할아버지와 신나게 놀다 콜콜 잠이 든다. 할아버지 이외 곁을 내주지 않는 스스로 세상 살아가는 신공 물고 온, 흰털 눈부신 백구두는 이제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영상을 보내오신다. 잠시 손님 발길 끊어진 시간 좁은 구둣방에 불편한 다리를 뻗은 할아버지 낡은 골덴바지 위에 서서 백구두가 꾹꾹이를 하지 않는가. 아주 예쁘고 다소곳이 정성을 다하여 눈은 아래로, 입은 미소 지으며 지극한 보은의 필살기 대방출을 시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신 할아버지는 그저 신기하고 행복하여 그 신통방통한 모습을 애묘인인 내게 자랑하고 싶어 하는 맘을 알기에 “아유, 효자 손자를 보셨네요, 이제야 효도를 보네요.”하며 거침없이 만개한 칭찬을 업로드하기 바쁘다.

 

지상에는 저토록 아름다운 존재들이 많은데 지상파 뉴스는 동물을 대하는 마음이 쇠끝 같은 사람들 소식으로 가득하다.

 

말이 없는 고요한 나비와 재롱둥이 백구두와 할아버지가 아무 욕심 없이 살아가는 구두병원, 사람들이 맡긴 일생의 고단한 발걸음들이 가볍게 누워 가을 닮은 사람의 길을 물어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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