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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15 10:12:30
  • 수정 2022-04-13 07: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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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희의 共感同感] 꿀 같은 명절 연휴가 지났다. 이번 설은 식혜를 만들어 선물했다.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감주를 만드셨다. 경상도에서는 단술이라고 불렀다. 살얼음 언 단술이야말로 겨울밤 최상의 별미다.

 

모든 음식은 정성과 시간이 더해져야 깊은 맛이 난다. 더딘 시간을 요하는 음식인 식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엿기름이 기본이다. 가을보리를 물에 담가 보리길이 두 배쯤 싹이 자랐을 때 말려둔다.


맷돌에 잘 갈은 엿기름을 주머니에 넣고 여러 번 치대어 내린 물을 4~5 시간 가라앉혀 앙금은 버리고, 맑은 물을(물론 여기까지는 엄마의 이야기고, 나는 간편한 티백을 사용함) 고실하게 지은 된밥에 붓고 6~7 시간 삭힌다.


밥솥을 열어 밥알이 동동 떠 있으면 펄펄 한소끔 끓여 설탕으로 단맛을 조절하면 완성이다. 커다란 솥에 네 번을 끓여 1.8리터 생수병 12개가 되었으니 한집에 한 두 개씩은 거뜬히 나눌 수 있는 양이 나왔다.

  

고려시대 <동국이상국집> ‘행당맥락(杏餳麥酪)’의 ‘낙(酪)’을 식혜로 보거나, 조선시대 영조 때 <소문사설>에 식혜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가난했던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찌든 삶에 달달한 맛을 접목하고 이끌어왔는지 실로 그 지혜가 놀랍다.

 

해마다 명절이면 자매들이 모여 큰 양푼에 나물 비빔밥을 비벼먹으며 어린 날을 회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 연휴는 5명 모임금지로 식혜만 나누고 헤어졌다. 간편하게 사서 먹는 일에 익숙한 시대라 식혜를 사 먹는 사람들이 급증한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옛 음식 본연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사 먹는 일이 꺼려진다. 전통 재래시장 반찬 가게는 제수용 각종 전, 나물, 조기, 산적을 미리 맞추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서 차리는 상차림은 아직 내게 허락되지 않는 이유는 어릴 적 은연중 보아온 엄마의 모습 때문은 아닐까.

 

식혜를 하면서 나박김치도 같은 양을 만들었다. 이번 설은 늙고 힘없는 언니들을 위해 정성으로 만든 나만의 이벤트다. 이벤트가 빛나는 순간은 그들의 감동 전화를 받는 순간이다.

 

두 아들이 다녀갔다. 부모에게 오고 가는 일이 ‘살짜기’오는 일이 되었다. “엄마, 뭐 마실 것 없어요.” 탄산음료만 즐기는 아들인줄 알았는데 식혜를 마시고난 반응이 매우 좋다. 마음이 행복으로 동동 뜬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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