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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08 08:57:38
  • 수정 2022-04-13 07: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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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날의 연속이다. 몸도 찌뿌둥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이 순간이 일완청다一椀淸茶를 즐길 적기다.

 

차의 풍미를 알게 되면서 믹스 커피가 있던 자리 여러 종류의 차가 대신한다. 구아바잎, 연잎차, 둥굴레, 맥문동, 황기차를 비롯하여 틈틈이 준비해 말려 둔 꽃차도 자리를 잡았다. 진달래, 목련, 박태기, 골드 메리가 투명한 병에서 빛깔과 향을 재우고 있다.

 

오랜 날을 동거한 고양이가 떠났다. 작은 동물의 세간을 정리하고 나니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다.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라 했던가. 얼마 전 아들도 결혼을 하여 완전한 객체, 사람살이의 주인공이 되었다. 떠나는 일은 유쾌한 장르는 아니지만 시절인연을 생각하며 차를 따른다.

 

노동의 칠원다가七苑茶歌 첫 번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시고(일완후문윤), 두 번째 잔은 고독과 번민을 없애주네(이완파독민), 세 번째 잔은 오천권의 문자가 생각나네(삼완수고장, 유유문자오천권), 네 번째 잔은 가벼운 땀이 흘러 평생 불평한 일들이 땀구멍으로 모두 흩어지네(사완발경한, 평생불평사, 진향모공산), 다섯 번째 잔은 살과 뼈가 맑아지고(오완기골청), 여섯 번째 잔은 신령과 통하네(육완통선령), 일곱 번째 잔은 마시기도 전에, 양겨드랑이에 가벼운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을 느끼네(칠완계불득, 유각두액습습경풍생)이라 했으니, 마지막 문장에서 호방하게 감탄사를 부린다.

 

범정 스님은 생전에 차는 차 맛을 아는 사람과 마셔야 ‘기쁨’이 라고 하셨다. 내게도 다행히 인생을 논할 도반 같은 벗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찻물을 끓이며, 차를 우려 따른다. 말 하지 않아도 신선해지고 맑아지는 얼굴은 생의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

 

말려둔 옥수수수염으로 차를 끓인다. 빗소리와 가느다란 실 같은 수염의 언어가 우러나 세사世事에 찌든 요소마다 스며들어 씻기고 정돈을 한다. 정돈을 위한 혼란이 우리의 시간에서 멀어지기를 소원한다.

 

다기에 찻물이 그윽하다. 차는 입으로만 마실 일이 아니다. 차를 마시며 마음을 내린다. 다작을 해도 그치지 않은 비도 물결을 지어 창공과 대지에 선선한 계절 입고 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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