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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8-11 08:18:10
  • 수정 2022-08-11 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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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몸은 땀으로 흥건하다. 누운 채로 양말을 벗어 던졌다. 이마로 귀밑으로만 땀이 흐른 것이 아니라 온몸이 젖었다.


목에 건 수건조차 내 몸처럼 축축하다. 흐린 날씨가 후덥지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날이 흐렸다고 마음을 놓았더니 푹푹 삶는 날씨다. 목소리 낮은 사람에게 표정으로 제압당하는 느낌이다. ! 당했다.


여기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결심보다 하던 일을 중단할까 걱정이 앞선다. 당장 시원하게 샤워하고 싶지만 참는다. 씻고 나면 나가기 싫어질 테니. 축축한 몸을 눕힌 채 멀뚱멀뚱 천정을 보는데 땀에 젖어 더러워진 내 몸보다 내 몸에 의해 더러워진 방바닥이 신경 쓰인다. 방바닥도 닦아야 하잖아. 언제나 하찮은 것이 나를 지배하는구나.


아예 하던 일을 마치고 들어오고 싶었지만,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이러다가 지친다. 미련한 짓이니 한숨 돌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들어왔다. 바닥에 등을 댄 채 눈을 뜨고 벽에 붙은 에어컨, 바람을 본다. 바닥도 시원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생각났지만 참는다. 맥주는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시원하지만, 더욱 더워질 게 뻔하다. 식염 포도당을 탄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만다.


얼굴은 벌겋게 익었다. 얼얼하다. 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은 까닭이다. 선크림을 발랐지만 닦여나가 소용없다. 반듯하게 누워 에어컨 바람을 멍하게 보는데 얼굴이, 아니, 볼 이 중력을 감당하지 못한다.


볼에 붙은 작은 근육이 아래로 당기는 느낌이다. 얼굴이 아프다. 팔의 근육이 아프고, 팔꿈치가 아프고, 허리가 아픈 것은 당연히 받아들이겠는데 얼굴 근육이 왜 아플까.


무리하면 입술이 부르트거나 코피가 나는 사람이 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데 나는 누가 봐도 알 수 없게 턱관절이 아프다. 이번에도 힘들어 턱관절에 탈이 났나? 관절이 아프긴 해도 그보다 얼굴이 아프다.


어떤, 무슨, 등의 의문형 단어를 동원해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첫아이 첫 똥 누는 장면이 떠오른다.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고 작은 볼살이 온 힘을 줬다.


낫질을 첫 똥 누는 신생아처럼 했구나. 힘에 부치는 만큼 얼굴의 근육이 다채롭게 힘을 줬다는 증거다. 누군가 내 표정을 봤다면 참 가관이었겠다. 어금니도 좀 문 것 같다. 어금니 꽉 물고 큰일 했구나, 내원 참.


오늘처럼 낫질을 오래 한 것은 처음이다. 낫이라면 초등학교 가기 전, 옥수수 대 자르다 왼쪽 검지 다친 기억이 있다. 흉이 아직도 있으니 죽어도 잊히지 않을 기억이다. 호되게 야단맞은 후로 낫과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그래도 낫이 한 식구처럼 옆에 있었던 나는 도시 태생인 남편보다 낫질이 났다.


남편은 고추를 따고 나는 들깨 고랑에 난 풀을 벴다. 낫질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요즘 말로 스킬이 있다. 풀 잡는 왼손과 낫을 잡은 오른손의 각도와 힘주기란 설명으로 될 일이 아니다. 각자 손가락 길이와 굵기가 다른 것처럼 맞는 각도와 적당한 힘이 필요하다.


풀을 몽땅 쓰러뜨렸다. 고랑이 훤하고 들깨가 시원하게 허리를 편다. 얼굴이 아픈 이유를 안 나는 나머지 풀을 베는 동안 어금니 물지 않고 얼굴에 힘주지 않았다. 나는 신생아가 아니잖아.


저녁을 짓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낫질했는데 얼굴이 왜 이렇게 아프지?”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이 되물었다.


얼굴로 일했어?”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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