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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23 07:52:54
  • 수정 2022-11-23 09: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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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미 시인

[안영미의 봉당에 앉아서하룻밤 된서리에 청청하던 풀밭이 폭삭 주저앉았다. 초록 막대사탕 같은 호박을 매달았던 넝쿨도 소용없다. 한여름 땡볕에 질기게 엽록소를 부풀리더니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풀은 노을 같은 색으로 마감을 말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진다. 마치 또박또박 치던 활자를 일시에 삭제한 듯하다. 절기라는 마우스가 된서리라는 커서를 작동하자 일시에 초록이 지워졌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활자화 한다.

 

괭이밥, 쥐오줌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씀바귀,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풀,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빳빳한 초록이던 호박잎은 축 늘어졌다. 비로소 몸을 드러내는 늙은 호박이다. 누렇도록 감쪽같이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래서 호박잎이 넓은 모양이다. 잎새 뒤에 숨겨야 늙을 때까지 안전하고 그래야 씨앗이 여물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숨어 있던 호박이 여섯 통이다.

 

며칠 춥더니 기온은 다시 올랐다. 지구의 온난화는 진행중이다. 비가 여름비처럼 내렸다. 배추밭에 갔더니 냉이가 봄처럼 났다. 배추를 열흘쯤 늦게 심었다. 너무 늦게 심었나 했는데 지구 온난화가 배추를 키운다. 높은 기온에서 웃자라는 것보다 배추와 무는 찬바람을 좀 맞아야 달고 맛있다. 프로 농부는 아니어도 그런 계산은 좀 했다.

 

배추는 고갱이를 노랗게 채우고 있는데 깽깽이풀은 죽었다. 며느리밑씻개풀도 자취를 감추고 없다. 풀 이름을 부르다 보면 비루하고 불쌍하다. 자기 이름이 평생 마음에 들지 않는 후남이 같다.

 

나를 위해 지은 이름이 아니라 너를 위해 지은 이름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개념인 이름이다. 가능만 하다면 풀 한 포기, 한 포기 다시 잘 살펴보고 지어주고 싶다.

 

개불알풀, 벌깨덩풀,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번식 또한 내가 아닌 네가 하는 것들이다. 바람이거나 동물의 털, 또는 발바닥이거나 새의 똥에 섞이거나내년에 다시 만나면 가만히 들여다보고 모습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볼까.

 

오늘은 예명 같은 본명을 가진 풀을 조문한다


[덧붙이는 글]
작가 안영미 시인은 안성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을 떠났다가 중년이 되어 돌아왔다. 세 아이를 키웠고 지금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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