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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6-27 14:41:02
  • 수정 2015-06-27 14: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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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강과 바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결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것만 같아 속내를 드러내고 싶을 것이기에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평온한 것이다. 흘러간다는 것은 그 속에 녹아든 많은 것들을 의미하며 타박이나 원망도 없이 함께 공존하며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싶다.




어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내 주변에 없었는데 우연히 젊은 어부 한사람을 알게 되었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지나도록 젊은 어부는 강가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경험하고 나누었을 것이다. 강바람과 햇살과 바다의 내음까지도 어부의 몸이 되어 살아왔을 시간. 그물을 드리우고 걷고 수확한 것을 선별하고 다음날을 위해 그물 손질을 반복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 여전히 좋다는 젊은 어부를 지탱해주는 힘은 무엇일까.


젊은 어부는 강에서 돌을 골라 초가집을 만든다. 몸체는 나무로 하고 안방과 사랑채 그리고 부엌과 나무를 쌓아 놓거나 곡식을 저장할 수 있는 광까지 만들고 집을 지탱해줄 대들보와 정교한 툇마루까지 조각해서 완성시킨다. 7년이란 긴 세월을 초가집 만드는 일에 몰두했었다고 한다. 해보고 싶은 것 만들고 싶은 것 그 많은 것 중에서 젊은 어부는 왜 초가집 만들 생각을 했을까.



사진 한 장에 눈물 흘린 적 있다. 새하얀 눈을 소복이 이고 있는 초가집 한 채와 그 옆의 오래 된 고목, 발자국 하나 없는 이른 아침. 사진 속으로 우리 삼형제가 뛰어들더니 발자국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내고 눈싸움하며 웃고 넘어지며 놀다가 손발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으면 집으로 뛰어 들어가 엄마가 아궁이에 지펴놓은 불앞에 쪼르르 앉는다. 그 삼형제 중 장남이었던 남동생이 사고로 젊은 나이에 우리와 이별했으니 삼형제가 함께였던 시간을 회상하게 했던 사진이 주는 그리움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에 충분했었다.


어릴 적 농사를 짓던 부모 밑에서 자란 젊은 어부는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다가 그립고 그리운 시절의 회상을 시작으로 초가집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초가집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라 딱히 말할 순 없지만 마음이 평안해지고 행복해지더란 말을 한다. 그것은 추억할 시절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풍경들이 결국은 나이 들어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살아가는 동안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어릴 적 일터로 나간 부모님이 없는 텅 빈 집에서 옆집 또래와 그 아이의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놀거나 아니면 홀로 지내는 날이 많았었다.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아주 지루하고 애가 타는 일이었다. 함께 놀아 줄 형제도 없었고 나를 따로 챙겨줄 정감 있는 손길하나 없이 해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까지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했던 시절의 기다림이란. 그래도 기다리면 돌아왔던 부모님이셨기에 아마도 투정 없이 착하게 기다려 주었던 것 같다.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반드시 기다린 만큼의 결과나 대가가 있어야 하는.


젊은 어부가 어부로서 살아오면서 겪었을 많은 이야기들.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많은 사연과 시련, 고통, 좌절도 있었을 것이고 반면 내 기다림처럼 착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어부의 그물드리움도 예상치 못한 날, 뜻하지 않은 곳에서 횡재를 가져다주기도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복지시설에서 매년 재능기부 물품을 받아 판매하여 시설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젊은 어부가 2년째 자신이 만든 초가집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그립고 그리운 것들을 초가집을 통해 만들어 집안 가득 진열해 놓아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에 출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가 시야를 달리 한 것이다. 바라보는 대상도 달라진 것이다. 물고기와 생과 사를 담판 짓는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라보게 된 세상. 나와 네가 아닌 우리를 본 것이다.


젊은 어부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늙어버린 부모님을 회상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부모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자식에게도 회상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 그리운 것들을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누며 사는 것들이지 싶다.


오늘도 찬바람 온몸으로 다 받아들이며 그물을 드리울 어부. 그가 물고기만 낚을 줄 알았다면 삶이 평안하지 않았을 것 같다. 힘든 나날을 치유할 방법을 찾았고 그것이 아주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것이라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도 오랜 세월동안 젊은 어부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다.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내겐 노래처럼 들린다.


그가 낙서처럼 써 놓았던 글귀가 좋아서 옮겼다.


거래처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는데

꼬부랑 폐지 할머니 참외박스 하나 팔러 오신다

한 개 200원이란다

커피 사먹고 남은 동전 400원 드렸더니 횡재 했단다

그 환한 웃음 가장 소박하게만 보이는 행복

가장 횡재한 표정을 보았다.





김선숙 수필가


안성문협회원

2006년 수필 (속박지)로 등단

2009년 대한민국 문학 수필부문수상(언론예술협)

공저 비내리는 밤엔 가슴이 설렌다 외 다수/ 시인과 사색

현)중증장애인시설 혜성원 재활기획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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