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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30 08:07:41
  • 수정 2023-06-30 09: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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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숙 수필가

[김선숙의 AESTHETIC] 한 여름밤에만 즐길 수 있었다. 마당에 돗자리 깔고 어머니는 말린 쑥에 불을 붙여 모깃불을 놓으시고 옥수수와 감자를 삶아 그릇에 푸짐히 담아 내오셨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삼 남매가 둘러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전쟁통에 있었던 아버지의 영웅담을 듣곤 했다. 우리 삼 남매에게 아버지는 완전 전쟁영웅이셨다. 전쟁 이야기를 듣다가 하나둘씩 드러눕기 시작하고 어머니는 수건을 연신 휘저으며 모기를 쫓으시곤 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별들이 내 이마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전쟁 이야기 속 아버지는 17.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터져 아수라장인 전쟁 통에서 살아남으셨으니 아버지의 목숨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무엇인지는 몰라도 묵직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저 높은 산처럼 살아가실 거라고 어린 나이에도 믿었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오셨던 길로 다시 돌아가실 땐 혼자셨다. 이북이 고향이신 아버지는 그 모진 세월 다 이기고 버티고 견뎌내셨을 것인데 아버지의 죽음을 아무도 지켜드리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야 할 정도로 가슴에 사무치는 일이다. 암 병동에 계시면서 자식들이 그렇게 들락거리며 살펴드렸건만 마지막 생을 다하시는 순간은 홀로셨다. 혼자 죽음을 맞으셨다.


얼마 전 직장의 설립자이신 분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그분도 늘 곁에 가족들이 있었지만 죽음을 홀로 맞으셨다. 태어나는 일도 죽음을 맞는 일도 혼자이긴 하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지만 홀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태산같이 많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외로움이 밀려온다.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질병과의 싸움도 그렇고 누군가가 대신해주면 좋겠는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롭다 외롭다를 읊조리게 된다.


장례식장에 다녀올 때마다 한사람이 살아온 생이 이렇게 짧은 예식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너무 허망하다며 악착같이 기를 쓰고 살 필요가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베풀면서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면 좋지 않겠냐라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언젠가 찾아올 홀로 가는 길에서 담담하고 후회 없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간다. 내 나이가 그렇다. 점점 사라져 없어질 사람들이 많아질 나이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는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많이 사랑하고 베풀어 보자.


우리로 살아보자. 결국은 혼자겠지만 그래도 우리로 살아내자. 그래야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럽다. 우리라는 단어가 예전에도 좋았지만 지금은 더 좋아졌다.


우리


[덧붙이는 글]
수필가, 풀꽃소리시낭송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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