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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05 09: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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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다는 말이다

여차하면 꽁꽁 얼어버리겠다는

냉정한 의중이지만

사무치게 얼었다가

서서히 녹았다는 증거다

먼 우주도 지구가 그리우면

별빛으로 지나가거나

눈송이로 펑펑 쏟아지듯이

그리하여 한 대접 찬물로

장독대에 놓이기도 하듯이

흰 꽃으로 무장한 저 눈송이들도

누군가의 그리움이 만든

갈 데까지 간 결정체다

내리다 머문 곳이 다 저의

운명자리라는 듯

글썽이는 눈꽃들을 보라

그리움도 식으면

찬물이 된다

 

그 찬물 마시고

속이나 차리라 한다

 

 

 

 

고르기아스는비존재에 관하여에서 제시한 여러 명제 중에서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실재하는 유무형의 물질이라 부를 수 있는 별빛도 쏟아지는 눈송이와 그리움은 존재하지 않음에서 비롯했다. 여러 요인에서 발생한 그리움의 과정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명확해지거나 또 다른 실물이 된다. 그리움의 존속은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의미의 부여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의미를 부여하기 전의 대상은 그냥 별빛이고 눈송이일 뿐이다. 내리다 머문 곳이 없었다면 별빛도 눈송이도 그리움도 없었을 것이다.

 

선형적으로 흐르며 변화의 주체라고 여겨지는 시간이라는 관념은 불가역적인 연속상에서 발생하며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인식되기에 회상공간에 늘 머물게 만드는 게 그리움이다.

 

삶은 매 순간이 이별의 연속이고 그리움이다. 계절이라는 순환 속에서 다시 맞이하는 절기임에도 지난 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끊임없이 휘발하는 내 몸을 보더라도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 ''라고 질문을 하는 사이에 만물은 또 변화한다.

 

발터 벤야민은일방통행로에서 "누군가를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라고 했다. 시인이 제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의 삶과 그리움을 총체적으로 알긴 어려워도 어떤 대상에 대한 희망, 슬픔 같은 감정과 감각작용을 배제한 상태의 묘파와 시간에 따르는 변화의 순간에 부여했던 의미가 퇴색, 변화한다고 얘기하는 시인의 의도를 짐작해 본다. (박용진 시인 / 평론가)

 

 

 

 




성영희 시인

 




2017경인일보》《대전일보신춘문예

시집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등이 있으며

2010년 시흥문학상 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

2015년 농어촌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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