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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0-09 12: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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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우주 만물은 생사(生死)와 인과(因果)의 끊임없는 변화로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음을 말한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리산으로 떠나는 첫 여행 1일차, 오전 840분에 출발하여 천은사와 노고단을 목적지로 도착하니 6시간이 걸렸다. 연휴를 이용한 가족여행이 많아 길이 막히고 복잡하여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전통 한옥인 운조루(雲鳥樓)로 향했다.

 

운조루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꼽히는데 금환락지(금가락지의 둥근 모양처럼 재물과 자손이 영원히 번창)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솟을 대문 앞에는 높고 커다란 원형의 뒤주가 있었는데 누구라도 굶주린 자들이 곡식을 가져가도록 마음을 헤아리는 후덕한 민심동락을 읽을 수 있었다.

 

고택 옆 텃밭에는 종부인 듯 여든이 넘은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가 구부정한 자세로 콩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방송을 통해 여러 번 보았던 할머니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한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99칸 권문세가 운조루는 무려 17번이나 강도가 드는 수난을 겪었는데 안타깝게도 종손인 장남이 큰 상처를 입어 지금까지 온전치 못한 몸으로 노모와 조상이 남긴 고택을 지키고 있는데 힘에 부치기도 하고 그 어머니의 평생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지만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힘겹고 녹록치 않다고 한다. 쩌렁하던 한때의 부귀영화란 것이 바로 제행무상이 아니겠는가.

 

장독대가 있는 안뜰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파란 하늘에 구름이 유유하다.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산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무심한 구름들 사이로 지저귀던 새들이 날기 지쳐 둥지로 돌아온다.‘고 했다. 정원의 붉은 꽃무릇도 붉음이 쇠락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은 머물다 돌아가고 다시 오는 만물의 순리처럼 닳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고택도, 할머니도 그 순리에 깃들어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2일차 일정은 이른 아침 도인(道人)들의 이상향이라 전해 오는 청학동 도인촌을 걸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맑은 길을 따라 걸으니 암석에 새겨진 글이 눈에 들어온다.

청학은 그 어디 있을까라고 새겨진 글을 보며 이 깊은 골짜기 어딘가에 청학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빈 초가집 길 앞에 아흔은 넘어 보이는 주름 굵은 등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도토리를 줍고 계셨다. 지리산 원주민인 지인의 노모였다. 지리산에서 언젠가 산의 일부로 돌아갈 한 생을 바라보는 감회가 청정해진다.

 

마을 제일 위에는 제를 올리는 천제당(天際堂)이 있었다. 제를 올리던 어른들이 다 떠나고 젊은이들도 도시로 떠난 몇 안남은 마을 사람들은 생계로 인해 제실은 그 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고 한다. 세월 무상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의 나도 적응하기 어려운 시대다. 고택의 종부는 여전히 들일을 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아픈 장손을 위해 약탕기에 정성껏 약을 달인다. 그녀의 생은 종부라는 이름으로 너무 고단했다.

 

지리산이란 큰 산맥을 처음 대하면서 하동에 거주하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 시인의 <</span>예술곳간 몽유>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리산에 대하여, 지리산에 거주하는 시인들과 예술과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밤이 푸르게 흘러갔다.

 

쓸쓸한 운조루와 먼지만 쌓인 청학동 제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이 또한 무위이화(無爲而化)인즉,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변화하여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니 흘러가는 데로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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