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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08 08: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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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느티나무, 벚나무, 은행나무와 소나무가 몸을 비우고 있다. 거리는 온통 바람과 비에 나뒹굴다 고요히 침묵하는 잎들로 울울하다.

 

빗물에 잠긴 은행잎을 보면서 걷는다. 샛노란 색으로 울다 가자고 화려한 색을 입었나보다. 언덕 위 느티나무 꼭대기 까치둥지가 드러난다.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더니 나무가 옷장을 정리하면서 까치가 드나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무는 잎을 내리고도 동요하지 않고 의연하다.

 

얼마 전 허물없이 지내는 죽마고우 친구가 SOS를 청했다. 눈만 뜨면 이른 아침부터 가게 돈 벌러 나가느라 집안이 엉망이라며 정리 좀 도와달라는 것이다. 현관 입구부터 무질서하게 놓인 물건들로 어수선하다. 큰방 3, 주방, 거실, 욕실 2, 다용도실 2, 안방에 딸린 베란다 곳곳 어디도 빈 공간이 없다.

 

먼저 주방부터 시작으로 일회용 용기들을 주워 담으니 비닐 한 개가 넘친다. 베란다에 생명 없는 빈 화분을 치우자 차를 마시며 창밖 풍경을 감상할 공간이 생겨났다. 방마다 불필요한 옷가지며 빈 상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제품과 자질구레한 물건이 사라지자 본래의 시원하고 넓은 집이 되었다.

 

하루에 완벽한 마무리는 힘들었지만 집이 산뜻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정리하는 일이 어렵다는 친구의 입가에 함박꽃웃음이 번졌다. 일에만 매달려 집안일에 소홀하여 어찌 손댈지 몰랐다는데 달라진 집안 모습에 기분이 새로워진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내 집을 치운 듯 개운해진다. 불필요한 것은 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며칠 비가 내리고 오늘은 창문이 덜컹대도록 바람이 세다. 나무는 계속 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낙엽의 장지가 바로 나무 아래였다니, 가늘게 드러난 가지에 마음을 비춰본다. 바람이 불면 홀연히 빈 몸이 되어 다시 처음의 시간을 기다리겠지. 때가 되면 이렇게 미련 없이 홀몸이 되는 나무의 마음을 경건히 읽어 내린다.

 

언젠가부터 몸에 밴 습관이 있다. 정리하고 청소하고 버리는 일이 즐겁고 상쾌하여 집에 오는 이들이 놀라워한다. 정돈된 상태를 보면 만족감이 든다. 어제는 서랍을 열어 한눈에 보이도록 나열했다. 주방에 그릇과 약봉지, 물컵, 조리기구도 제자리에 있다. 넘치는 책은 버리기 쉽지 않아 세로로 여섯 칸으로 나눠진 장에 꽂으니 반듯하다. 차분하고 깔끔한 공간에 있으면 밖으로 나가기 싫어진다.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나무의 옷장이 비워질까. 감추지 않고 빈 타인의 옷장을 바라보면 먹먹한 시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단정한 모습에서 배워야할 주옥같은 문장들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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