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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11 09:39:52
  • 수정 2023-12-11 10: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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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가나다순 저장된 전화기 주소록을 검색한다.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인연부터 일 관계나 어느 순간 친구로 다가온 이름을 곰곰이 들여다보며 신중하게 정리의 시간을 갖는다. 과반수가 별 친분이 없는 번호와 이름을 연결하면서 친구관계를 지운다. 모든 관계는 냉정하게 정리할 때 깔끔해진다.


유추프라카치아 꽃은 결벽증이 강한 꽃이다. 생명체가 꽃을 건드리는 순간 시름시름 앓다가 3개월을 넘기지 못 하고 죽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연구 결과 같은 사람이 매일같이 만져주면 생존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지속적 사랑과 관심이 꽃을 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 꽃을 수십 년간 연구한 박사의 학론이기도 하다. 사람의 인연과 사랑도 이 유추프라카치아와 같다. 잠깐 만나고 마는 만남, 잠깐 이용하고 돌아서는 인연이 아니라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등단한지 꽤 오래된 친구가 <</span>시냇물 계단>이란 제목의 첫 시집을 출간했다. 함께 시 공부를 하던 인연이 깊어 지금까지 함께하는 마음 맑은 시인이다. 작품 해설을 해주기도 하고 시집 출간한 기념으로 꽃 박사 명숙 시인과 셋이서 하루를 보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날씨가 너무 포근하여 미리내 성지를 거닐며 하늘을 보며 바람을 맞았다. 애기 무당벌레가 소매 끝에 앉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연한 겨울 풀들이 돋아 봄처럼 여겨졌다. 잎은 다 떨어지고 없지만 가지만 남은 나무의 향기도 좋아서 우리들은 숨을 고요히 내쉬며 걸었다.


수사가 운영하는 성물을 파는 곳에서 친구가 시집을 고르자고 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과 산문집을 하나씩 골랐다. ‘바다가 보이는 수녀원에서라고 쓰인 수녀님의 산문집 <</span>꽃삽>을 집었다. 표지 뒷면 서문에서 <</span>조그만 꽃삽을 들고 나가 작은 꽃밭을 손질할 적마다 우리의 삶도 날마다 새롭게 꽃삽을 들고 하루’라는 정원을 손질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부분이 책을 대하는 마음을 행복하게 했다.


직업병으로 허리협착증을 얻은 시인이 오래 걷기 힘들어 미산저수지를 바라다볼 수 있는 카페에 들렀다. 작은 토분에 비올라가 꽃을 피우고, 산국이 노란 꽃빛을 잃지 않고 있어 신기하였다. 매서웠던 시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있는 작은 꽃의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동시에 꽃에게 묻는 우리의 낮고 겸허한 물음이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편안하고 안부를 묻는 눈길과 언어에서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이 세계가 영원히 살아있는 우정의 유추프라카치아 꽃은 아닐까하는 확신이 선다. 우정이란 말이 먼 고대의 언어처럼 들린다하여도 좋다. 느낌 없이 사람을 지우는 인연을 만들지 말자. 존귀한 사람이란 존재는 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꽃씨이니 함부로 인연을 지우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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