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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14 09: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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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네요

사각 테이블 아래 발자국 두 개가 울고 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아하! 눈사람이었군요

낡고 긴 의자에 홀로 앉아 더 커다란 눈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군요

무거우신가요 아직이라고요

조그만 불씨가 당신 몸을 빌려 하얗게 날아오르는 동안 쌓여가겠군요

어차피 흘러내릴 거 아닌가요

방해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그건 눈이 맞나요?

 

눈사람 물로 만들어진 사람 흐르는 것을 좋아하고 불은 뜨겁죠

 

문은 좁아요 너무 오래 있지는 말자고요

 

눈사람

두 발을 발자국 위에 얌전히 올려놓으실래요

귀는 막고요

커피는 이천 원입니다

식었다고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커피도 식었답니다

 

이제 당신은 작아지고 발자국은 커지겠죠

쓸쓸하신가요 서운하신가요

눈은 또 내릴 거예요 발자국은 당신을 찾으며 또 울겠죠

식어버린 커피는 쌓여갈 거고요

 

조금 가벼워졌나요 내일 쌓일 만큼만이라도 더 덜어두고 가세요

그거면 됐어요

 

눈사람 물로 만들어진 사람

언젠가 당신 몸까지 풀어져 모두 흐르고 나면 그 자리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요

 

참 발자국은 오늘 집에 못 간답니다

 

 

 





 

눈사람을 이루는 눈은 물에서 시작한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여러 형상으로 변모하는 속성과 순환의 유동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마주하는 '타자' 혹은 '대상'은 언젠가는 이별을 경험케 하면서도 순간 형상에 머물게 만든다. 눈사람이 이러하다. 눈사람의 시적 의의는 '착시''회귀'. '있음''없음', '접촉''분리'의 반복에서 영속성과 소멸을 생각하게 한다.

 

니체가 썼던우상의 황혼에서 "사물들의 진정한 본질을 식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기호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 에 고유한 기호들이다."라고 했다. 와 유에 대한 구분은 유의미한 것일까. 를 향하는 과정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유에 대한 사유도 없을 것이다.

 

시간에 따라 소멸된 줄 알았던 눈사람은 비, 구름을 거쳐 다시 우리와 만나게 된다. 눈사람의 순환 현상에 대한 사유를 일상에 용해시킨 김인정 시인의 작품에 머물러 본다. (박용진 시인/평론가)

 

 

 

 



김인정 시인

 



2021. 광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23. 경북일보문학대전 장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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