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24-04-04 07:07:59
  • 수정 2024-04-04 11:34:21
기사수정

▲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할아버지의 구두 병원 앞, 커다란 벚꽃이 팝콘처럼 꽃을 피웠다.


울퉁불퉁 거칠게 드러난 밑동 뿌리에 고양이 백구두와 나비가 발톱을 긁어대도 때가되면 연분홍 꽃을 드리우는 벚나무가 경이롭다. 구두를 수선하거나 무딘 칼을 가는 손님은 많이 없어도 나무 아래 고양이와 할아버지 모습이 무척 평화로운 봄날이다.


몸이 불편하신 팔순이 가까운 할아버지는 두 생명 때문에 손님 빌 날 많아도 가게 문을 여신다. 출근길 모처럼 칼을 연마하거나 구두 손질을 하는 모습이라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조고각하照顧脚下라 한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온전히 기대는 생명을 저버리지 않는 나이든 사람 어른의 따뜻한 예의를 할아버지에게 배운다.


누구나 주어진 각자의 일에 조고각하의 마음일 것이다. 해마다 오래 일하던 동료가 정년을 맞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다. 의자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떠나고 보면 그 사람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리워하게 되며, 새로운 사람과 마음 맞추어 지내다보니 어느새 나의 시간도 그곳에 가까워가고 있다.


흔히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논하지만 헤어진 사람과는 어느새 모르는 남이 되어 또 살아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복잡한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것이다.


한 지역에 사람이 몰리고 빠져나가는 것에 따라 상권이 살고 죽는다. 삼성이라는 거물의 수많은 인력이 나가면서 문을 닫은 상가들이 많아졌다. 잠시 잘 나가고 힘든 시간은 순간일 뿐이지 영원하지 않다. 주말 전날인데도 밤거리가 어둡다. 동네 마트도 매출이 줄면서 야채포장 시간제 일을 하던 아주머니가 그만두고, 고용보험 실업급여가 끝난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지금 가장 눈부신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꽃이 피었다는 사실이다. 적막하고 어두운 상실의 길을 걸어 나와 봄을 기다린 모든 만물을 위안하듯 아름답고 숭고한, 묵묵한 나무의 모습에서 희망을 얻는다.


봄이 되니 한편의 시가 읽고 싶다. 시인 랭보는 '감각'이란 시 첫 행에서 야청빛이란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노래했다. 검은 색을 띤 푸른 빛깔을 뜻하는데 봄밤에 보는 꽃이 그러하지 않을까.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많고 생각도 많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에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감각을 읊으니, 생이 무럭무럭 기쁨으로 두둑해진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rtimes.co.kr/news/view.php?idx=28585
기자프로필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칠장사 산사음악
안성불교 사암연합회, 부처님 오신 날…
문화로 살기좋은 문화도시 안성
한경국립대학교
만복식당
설경철 주산 암산
넥스트팬지아
산책길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