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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의 詩가 있는 아침] 서시의 반대말도 모르는 서시 -아버지 문충성 시인께 / 문지아
  • 기사등록 2024-05-16 1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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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가 절필을 앞둔 것 같다

적절하고 합당한 시기에 바쳐야 할

마지막 눈물을 가둬야 한다

비가 움푹 그린 동그라미, 동그라미

하늘도 땅을 섬긴다는 영전(靈前)일까

당직처럼 남아 병실이 끓는 동안

아버지께 전공을 들킨 듯 다른 길을 간

가방 속 여권을 내려놓는다

포트가 감실대듯 쿡쿡 밭은 후에야

잊었던 커피 분말을 끄덕 쏟자

모래 위 뛰놀던 그 시절의 소녀가

놀이는 끝났다며 운동화를 벗고 다가온다

야금야금 뒤축의 피를 빠는 구두를 신고

벌써 두 달째 머무른 1103호실

처음엔 두터웠던 일력이 뜯겨 야위어질 때

마흔이 넘어서야 주워듣는 역설의 소리

절필이 아니라 시를 쓰는 새로운 숨소리

비로소 제주 바다의 풍랑이 옮겨 쓰는 서시

 

 





 

작고한 문충성 시인은 시집마지막 눈이 내릴 때를 비롯하여 총 25권의 저서를 발간한 제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지아 시인의 부친이다.

 

사부가를 떠올리는 작품서시의 반대말도 모르는 만남에서 읽을 수 있는 의의는 겹침과 만남, 분리의 연쇄 반응이다. 지난 기억이 쉼 없이 표층의식에 떠돌면서 떠올리고 싶지 않거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의 조우로 그리움과 괴로움은 동시에 묘파描破한다.

 

마지막 기억은 병실에서 오래도록 머문 시간이어서 시인에게 남은 아픔은 주체의 무기력을 다시 경험케 한다. 태어나면서 모체로부터의 분리, 불안은 누구나 겪지만 성장(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 혹은 결핍)하며 온전해질 것 같은 감정은 다시 이별을 겪으며 혼재한다.

 

부친에 대한 기억이 마냥 슬픔과 아련한 추억에 대한 아쉬움만이 전부인 것일까. 프랑스의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원점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고 발돋움할 수 있게 도와준다"라고 했다. 기억은 상상과 창조의 질료로서 미래희망에의 힘을 주리라 믿는다. 제주 바다의 풍랑 소리가 힘차다. (박용진 시인 평론가)

 

 






문지아 시인




2023시사사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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