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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5-22 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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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아주 오랜만에 대중 목욕탕에 갔다. 천천히 낡아가며 익숙한 풍경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동네 작은 목욕탕에 대한 기억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니던 동호장 목욕탕은 자수정이란 넓은 사우나탕이 생겨도 발길 돌리지 않는 곳이다. 의리기보다 편안해서이다.

 

대중탕을 가는 일은 설날과 같은 명절 전 이른 새벽 온 가족의 깨끗한 한해 의식 같았다. 김이 서려 앞이 부연 욕탕에 몸을 담구고 언니들과 서로의 등을 밀어주던 정겨운 한 때가 나이 가득 찬 지금도 환하다.

 

몸이 개운치 않은 날이면 언니와 뜨끈한 탕에 들어앉아 그간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잠시나마 그 시절과 향유한다. 찻집이 아니어도 일상을 즐겁게 흘리는 이 공간은 두 사람 기억에 공동으로 머무는 그리운 장소는 아닐까.

 

목욕탕에서 어느 누구도 어떤 사욕에 잡혀 있을 수 없다. 이 순간만은 무욕즉강(無慾卽鋼)이란 고사 성어를 좋아한다. <</span>무욕즉강>의 사전적 의미는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로 보자면 타인과 비길 수 없는 강한 사람임을 자부한다. 솔직히 요즘 그리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그리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에 더 가깝다.

옷을 갈아입다가 자녀들 이야기에 발끈한 아주머니들 대화를 듣게 되었다. 요지는 있는 돈 죽을 때까지 잘 간수하고 손 벌리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무언의 끄덕임으로 고개를 드는 순간 옆 아주머니도 맞장구를 치셨다.

 

한쪽 가슴이 절제된 모습으로 보아 유방암 수술을 하신 것 같았다. 신체 일부, 그것도 가슴이 없다고 생각하니 밝은 아주머니 모습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그러면서 가슴이 사라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저런 상황을 맞으면 모든 허탈과 병행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물질이나 신체나 다 중요한 요소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 수 있는 문제인데 이것과 저것의 복잡 미묘한 저면에 있던 생각들이 거침없이 나를 흔들어댄다.

 

목욕탕에서 사라진 가슴을 가진 사람과 만난이후 사라지다의 정의와 속삭였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속뜻은 무심해지는 것이다. 없어도 밝은 표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소심하게 울렁이게 하던 결점의 생각들은 생을 살아감에 있어 소중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풀이해 본다.

 

옷매무새를 살피는 순간마다 무엇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해진다. 옷을 입은 외양이 양쪽 다 바르다는 것만으로 깊고 깊은 안도감이 든다. 늙어가는 시간의 훈장이겠지만 처진 가슴에 불만이기도 했다.

 

가슴이 제거된 목욕탕에서 우연히 마주한 아주머니가 생의 교과서가 되고 울림이 되었다. 이제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유영희 詩人.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개인시집 ‘어느 별자리를 가져도 좋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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