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볕 엷은 창호지인가
저녁 노을길인가
볏짚 한 줌 들 힘도 부친다
그네 봄 여름 가을 가고 겨울 끝자락
매운 바람 참아가는 생명줄
막차 같은 희미한 성에
그네 빈 마음
오늘도 까맣게 잊은
사그라져 가는 잿불 다독여
무서리 내린 보랏빛 슬픔
(박용진 시인/펑론가) 시인이 언급한 보라색(violet, 紫色)은 가시광선 중 가장 짧은 파장에서 나오는 색이며 빛의 굴절률이 무지개 빛 중 가장 큰 색이다. 만들어 내기도 어려우며 우울, 불안 등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된다.
시인은 보랏빛 슬픔이라고 얘기했다. 무엇에 대한 슬픔을 말한 것일까.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음이나, 온전치 못한 상황과 결여를 메우려는 이들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슬픔(보랏빛)을 추정할 뿐이다.
어떤 일(사건)은 예측 바깥에서 갑작스럽게 오는 경우와 예측할 수 있음에도 불가항력적으로 맞이하는 수가 있다. 저녁노을이 얇은 창호지에 머물다가 사라지고 사람과의 대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일이다. 매 순간 연속되는 어떤 '일'에 대하여 항거도 하지만 그저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물질세계는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활활 타오르기 마련이다.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아쉬움과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마치 타버린 재를 관조하는 듯한 사람이 있다. '그네'라는 삼인칭대명사에서 알 수가 있듯이 전수분 시인이 후자에 해당한다.
삶은 '비어있음'과 '있음'의 반복이다. 그리고 소실점을 배웅하는 순간에 머무는 일도 포함이 된다. 무언가로 인하여 슬픔이 일어나다(happen)를 지나서 행복(happiness)에 물든 시인을 떠올리며 보랏빛과 슬픔으로 지속될 사유를 멈춘다.

전수분 시인
2016년《대구문학》등단
시집『볼 수 없는 풍경』『황금 꽃술』
2015년, 2017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