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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7-11 09:5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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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소문을 들은 사월보성 뒤편 논과 밭 사이 기연지(起連池) 있다 바람은 둑에 갇혔는지 오도 가도 않는 여름 끄트머리 건너편 경부선 무궁화호 이야기처럼 길게 지나가고 부풀어진 푸른 연잎은 소문처럼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저녁노을 등에 업고 둑 한 바퀴 걷고 나는 연이 닿는 둑 아래로 내려앉았다 연꽃봉오리 마이크 삼아 휘파람 불고 연등 켜지는 밤이 왔다

 

밤이 오고

바람 없이 누운 연못에

풀벌레 소리만 수군거리는데

첨벙, 연못 속에 뛰어든 달 있었다

해도 달도 쉬어가는 물정거장

내 마음 풍덩 빠지고 돌아온 밤이었다

 

 

 

 

 

 



(박용진 시인/평론가)대구 수성구 사월동에는 기연지라는 연못이 있다.

 

계절 따라 피는 연꽃이 있고 수시로 지나가는 열차 소리와 노을 따라 그리움이 오는, 고즈넉한 풍경에 젖을 수 있다. 기연지起連池는 웅덩이, 항아리(puddle, pot)와 비슷하다. 못 안에는 생명을 잉태한 알과 수생곤충, 양서류가 있고 부레옥잠, 연잎 등의 수생식물이 가득하다.

 

가능태可能態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물의 생성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개념으로서 "사물이 가능적 존재에서 현실적 존재인 현실태現實態로 발전한다"라고 했다. 연못 내, 외부의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변화를 품고 있다.

 

하지만 시인에게 있어서는 현실태로 넘어가기 전의 상태일 뿐이다. 살아가며 특정 구간을 만날 때가 있는데 시인에게 있어서 기연지는 가능성(potential)의 지점이다. 온전하게 연소하기 힘든 구간이지만 언제나 열린 곳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또는 낯설어질 수 있는, 못에 담긴 무언가는 언제든지 모습을 나타낼 준비가 되어있거나 변화하기 이전의 상태로 존재한다.

 

백색소음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여름을 기점으로 생물 작용의 소음이 뒤덮는다. 철학자 사이먼 크리츨리는 "이 세상은 가까운 것, 낮은 것, 평범한 것, 불완전한 것들의 세계"라고 했다.

 

시인이 언급한 기이한 소문(풀벌레 소리) 또한 불규칙한 연못의 소음과 같으리라. 연못 안에 있는 것들은 개별적 존재로 여겨지지만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 물과 먹이, 움직임에 따르는 진동과 이로 인한 연쇄 효과, 외부자극에 대한 공동 반응 등, 분리 독립한 단독자의 상태는 없다. 우리 세계와 같다.

 

가능성의 상태인 연못으로 달이 뛰어들고 시인의 마음도 풍덩 빠지는 생경한 정황에서 시인은 변화(앞날에 대한 기대 혹은 부정적인 감정으로의 퇴보)하기보다 중간자로 머물기를 택했다. 시인의 마음은 전지적全知的이었으리라.

 

 

 







전종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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