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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8-22 09: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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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를 바둥거리며 따라가는

구름의 유전자는 조바심이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

없는 일로 꽉 찬 열 평짜리 방에서 갈 길을 잃는다

 

휴식을 게으름으로 해석하는 여자에게

불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서

구름은 먹빛이 되어도 쉴 줄을 모르고

 

발자국도 없고 갈 곳도 없는 행려병자처럼

여자는 허름한 생각을 어깨에 걸치고

새벽 세 시를 떠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눈물이

벤치에 앉아있다

밤이 되어야 나타나는 별들도

누군가 벤치에 떨어뜨린 눈물이었을까

 

새벽 배송중인 택배차가 조명을 비추자

밤고양이는 아치형으로 털을 곤두세우고

배송 받을 새벽이 없는 여자의 방은

어둠 속으로 숨는다

 

현수막을 붙들고 섰던 가로수에서 털썩

바닥으로 떨어진 낙엽은

 

탈진한 구름이 쫓아가던 달그림자다

 

 

 



 

 

(박용진 시인/평론가) 소진消盡, 연소燃燒, 탈진脫盡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은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와 정신의 피로를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증상이다. 현대사회의 특성상 잠시도 쉴 사이 없는 성과 위주의 현대사회의 구조를 보더라도 과다한 업무와 이에 따르는 부작용을 겪기 일쑤다.

 

일하고 나서 쉬고, 일하고 쉬고, 반복하는 일상에서 언제나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힘이 든다. 신체 리듬과 변수로 작용하는 사건들은 주변에 산재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으로 인하여 번아웃에 이르렀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화자가 언급한 '바쁨', '서둘러', '행려병자', '눈물' 같은 자신의 경험을 대입시켜 본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슬픔은 더 큰 완전성에서 더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것이라 했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불완전한 현실과 이에 따르는 잔여물에 매몰되며 불행하다고 여기기 쉬워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괴로움에 주저앉지 않는다. 앞날을 내다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해 나간다. 화자가 읊은 사람이 없는 풍경은 나름의 휴식을 가지는 방식으로 여겨진다.

 

일상에서 어긋난, 소통 부재로 인한 빈약한 관계성과 이에 따르는 갈등으로 인하여 타임루프처럼 반복하는 피상적이고 수동적인 감정 표현은 내적 부담으로 쌓이기 마련이다. 낙엽처럼 떨어진 달그림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언어의 또 다른 사용인, 응집과 해체를 반복하는, 시 쓰기로 화자는 심리적 균형 상태인 인지적 항상성을 가졌으리라 믿는다.

 

 

 

 

 




김옥전 시인

 



동덕여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수료

2004시와시학으로 등단

2014년 청송객주문학대전 시부문 동상

계간아토포스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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