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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8-09 13:46:26
  • 수정 2016-08-09 1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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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이제 글 좀 써볼까 맘먹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전화가 온다. 누군지 확인했다. 헉! 마을 ‘기차화통’행님이시다. 이 행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새벽 5시에도, 나보고 농사일 좀 같이 하자고 부르시는 행님이시다.


“여보! 당신 지금 집에 없다고........”


아내의 ‘지도편달’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전화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동상! 지금 집에 있는 겨?”



▲ 기차화통행님과 함께


행님의 첫마디가 수상하다. 이렇게 물으면 둘 중에 하나다. 지금 일 좀 같이 하자던지, 아니면 낮술 한잔 하자던지. 순간 내 뇌의 회전수가 평소의 3.5배는 돌아간다. 아내의 조언대로 집에 없다 해야 할지. 아니면, 사자 앞에 어린 양처럼 있다해야할지.


“야~~ 지금 있시유”


나의 머릿속 고민과 달리 나의 입은 벌써 있다고 말해버렸다.


‘까짓 거, 부딪쳐 보는 겨. 설마 행님이 날 잡아 잡수시것어’


뭐, 이런 생각이 나로 하여금 있다고 말하게 했나보다.


역시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 적중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라고.


“지금 울 집으로 전기밥통이 배달된 디야. 자네가 울 엄니 좀 찾아서 밥통 좀 받아 놔”


아내와 나는 전화 속 행님의 복음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웃으며, 내가 대답했다.


“알것시유. 행님. 싸랑해유 하하하하”


전화 너머 행님의 황당한 표정이 그려졌다. 갑자기 웬 사랑!


행님은 지금 직장에 있고, 밥통이 지금 택배로 온다고 전화를 받은 게다. 행님은 엄니께 전화를 했고, 전화를 안 받으시니,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쩌지. 이때, 제일 먼저 떠 오른 사람이 나였을 테고, 나에게 전화를 넣었던 거다.


난, 그 전화를 받고, 싱글벙글 하며 엄니를 찾아 나섰다. 사실 찾아 나설 것도 없었다. 좀 전에 울 집 창문 너머로, 울 집 뒤에 있는 밭으로 가시는 걸 보아 두었기 때문이다.



“엄니! 행님이 전화 왔는디요. 전기밥통 택배 받아놓으랍니다. 엄니도 같이 가서 받아 놓으래유”


뒷동산 참깨 밭에서 깨를 수확하고 있는 엄니를 만났다. 엄니가 말씀하신다.


“그려. 근디 나 지금 바뻐. 하던 거 마저 해야혀. 긍게 자네가 밥통 받아 놔”


“야~~ 알것시유. 근디, 엄니 참깨가 엄니 키보다 크구마요. 히히히‘


“맞어. 내 키보다 더 큰놈들을 조지는 겨 씨방 호호호”


사실, 엄니가 같이 가신다 할 까봐 걱정했다. 행님은 10분 뒤에 밥통 오니 받아놓으라고 했고, 대답을 철석같이 했는데, 일하고 있는 팔순 엄니 모시고, 집에까지 10분은 도저히 무리였다.


행님 집에 도착했다. 혹시 그동안 택배가 왔다갔나 해서, 행님 집 현관문을 열어 보았다. 아직 왔다가진 않았나 보다. 그 집 바깥 평상에 앉았다. 집에 들어가서 기다릴까 하다가, 눈에 보여야지 싶어서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택배아저씨가 도착했다. 아저씨는 커다란 밥통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이때, 평소 집에서도 안하던 짓을 내가 하고야 말았다.


택배아저씨의 밥통을 내가 얼른 받아버렸다. 집에선, 택배아저씨보고 “여기 놓아 주세요”라고 하는데. 이런 걸 오버라고 해야 하나,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하.


밥통 박스를 일단 거실에 두고, 폰으로 사진부터 찍었다. 행님에게 메시지로 보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봐라. 이 양반이 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볼 줄이나 아나 모르겠네. 이제 환갑 갓 지난 양반이 얼마나 ‘노인스러운지’. 얼마 전 행님이 2G폰에서 ‘알뜰폰’으로 바꿨으니 볼 수 있겠지. 못 봐도 어쩔 수 없고.


일단 사진을 행님 폰으로 전송했다. 역시나 답문이 없다. 전화를 넣었다.


“행님! 밥통 받아 놨시유”


“그려. 수고했어. 엄니는?”


“밭에서 일하신다고 못왔시유”“아 글쿠만. 동상! 수고혔어”


이렇게 대화가 끝나는 듯 했다. 전화를 끊으려 하는 나에게 행님이 또 한마디 하신다.


“동상 말여. 울 집 냉장고에 음료수라도 꺼내 먹어. 꼭 꺼내 먹어야 하는 겨. 알것쟈?”


“야~ 알것시유”



행님 성품을 내가 잘 안다. 하라고 했는데, 안하면 삐지신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가 있나 스캔을 했다. 별게 없다. 눈에 띄는 음료수 하나. 바로 요구르트다.


하나를 꺼내 먹었다. 뒤에 나 스스로도 꺼내 먹었다는 것에 당당하려고, 혹시 뒤에 행님이 물으면 거짓으로 “아 네”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그랬다.


하여튼 미션 성공에 보상까지. 거기다가 많이 일하지 않고, 잠시 밥통하나 받아 준 것으로 생색을 엄청 낼 수 있는 일이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행님 전화가 오늘만 같아라!


하하하하 담도 없고, 대문도 없고, 현관문도 잠그지 않는 울 마을이 이래서 좋다.





<송상호>

유심출판사 작가, 더불어의 집 목사, 시인, 오마이뉴스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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