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둥이었던 인류,
하늘을 잠시
받쳤던 인류
인류의 서재였던 적은
오지 않으리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은
발연되지 않으리
인류는 기억되지 않으리
텅 빈 객석
상관하지 않는 햇빛만
자랑스럽게
무성하리
아버지는 나를
잊어먹고 나는
아버지를
잊어먹고
쓸쓸히 잊혀지는
존재라네

박찬일 시인
1993년《현대시사상》등단. 시집으로『화장실에서 욕하는 자들』, 『나비를 보는 고통』,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모자나무』, 『하느님과 함께 고릴라와 함께 삼손과 데릴라와 함께』, 『인류』, 『북극점』,『수정본』,『중앙SUNDAY-서울1』,『아버지 형이상학』,『기쁨의 총회』등이 있다.
(박용진 시인/평론가) 존재存在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에 실제로 있음. 또는 그런 대상이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외계外界에 객관적으로 실재함을 말한다. 존재라는 말은 포괄적이며 '비존재'와 '부재'不在를 포함한다. 늘 변하면서 소멸과 무無를 향하는 만상의 속성이기에 존재라는 말은 현존 상태만을 뜻하는 게 아닌, 포괄적이다.
지구에는 많은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갈등과 전쟁, 질병, 재난을 겪으면서 서로를 위해주기도 한다. 늘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해체, 분열에 대한 자기 정체성에 의문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지금 순간 외의, 비존재 상태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하기에 존재는 비존재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며 두려움을 가진다.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서 참치캔이 발견되었다. 심해에서 특별한 생명과 특이점에 대한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결국은 없어져서 사라질 것임을 알지만 왜, 인류는 환경오염과 인구 폭증 같은, 빠른 소멸을 향하는 것일까. 존재에 대한 부정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암울해질 미래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않음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