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지 마라. 사람아!
오늘도 소풍 같은 날이 너에게 있나니
길을 가다가 힘들면
맑은 물 흐르는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에
너의 고단한 발목을 담그면 되나니
알고 있는 노래 몇 소절 흥얼거리고
풀잎 잘근잘근 씹으며
네가 돌아갈 너의 본향을 생각하면 되나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와도
너는 두려워하거나 외로워하지 마라
새들이 날아가고 무서리 덮인 들길에서
너는 네가 한 통의 편지가 되어
아침을 불러오고 아침이슬을 불러오면 되나니
울지 마라. 사람아!
소풍길에서는 울지 마라. 사람아!

오진숙 시인
문학의 봄 정회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박용진 시인 평론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우리들은, 어느 한 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병들고 고뇌하며 매순간 소멸을 향한다. 왜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왜 이런 고통에 던졌을까. 피투被投에 대한 의문만 남을 뿐이다. 삶은 죽음 같은 고통을 바탕하는 것일까.
공기가 있음으로 인하여 숨을 쉴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공기의 실체를 제대로 감각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와 맞닿아 있으면서도, 이를 지나치고 있다. 영혼의 불멸성과 환생 구조를 안다면 생과 사를 초월할 수 있음에도.
시인은 "울지 마라. 사람아!"/"소풍길에서는 울지 마라. 사람아!"라고 했다. '울음'은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슬플 때와 아플 때는 물론, 기뻐서도 울 수도 있다. 시인이 말한 '울음'의 유의미는 삭막한 생에 대한 의지의 필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리라.
'소풍길에서는'~ 라는 시인의 말에 핵심 의도를 짐작해본다. 소풍을 떠난 시간은 즐거움이 넘친다. 소풍을 다녀온 후에는 즐겁지 않은 일도 생길수 있다. 삶은 오직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소풍길'에서 삶의 유의미를 확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