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조 '아름누리모꼬지' 해설이 있는 안성의 흥" 성료
"가락은 사람을 건너 전승의 시간을 잇고 있었다"
▲ ‘해설이 있는 안성의 흥’에서 하현조 경기도 무형유산 안성남사당 풍물놀이 이수자 모습[우리타임즈 = 김영식 기자] 공연이 끝났는데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조명이 꺼지고 박수가 멎은 뒤에도, 무대 위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연주의 잔향이 아니라, 사람을 건너온 시간의 체온 같은 것이었다.
12월 26일 밤, 안성평생학습관 다목적실에서 열린 ‘해설이 있는 안성의 흥, 하현조’는 연주회라기보다 기록에 가까운 자리였다. 이 무대는 소리를 들려주기보다, 소리가 어떻게 오늘까지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공연의 시작은 질문이었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한 지역의 역사가 되는가.’
영상과 내레이션은 흉내 내지 않고, 끊어내지 않으며, 떠내려가지 않았던 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갔다. 이원보에서 김기복 선생을 거쳐 지금, 하현조에게 이른 가락의 시간. 그 순간 무대는 더 이상 공연장이 아니라, 전승이 잠시 머무는 장소가 되었다.
오프닝 멘트는 짧고 담담했다. 안성의 흥은 소리로 시작되었고, 소리는 장단이 되었으며, 장단은 다시 사람을 통해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 이날 울리는 소리는 개인의 기량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결과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첫 장면은 모내기소리였다. 흙을 밟고 호흡을 맞추던 농경의 리듬은 안성 흥의 출발점이었다. 하현조를 중심으로 안성가락지킴이와 풍물청이 함께 만들어낸 이 장면은, 음악이 무대 이전에 이미 삶 속에 존재했음을 또렷하게 환기했다. 소리는 노동이었고, 공동체였으며, 기록 이전에 이미 기억이었다.
이어지는 앉은반과 선반 무대에서 전승의 계보는 더욱 선명해졌다. 문하생들의 자진가락 위에 하현조의 삼채가락 중심 선반이 이어지자, 가락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자신을 증명했다. 이원보에서 김기복으로, 김기복에서 하현조로 이어진 흐름은 설명 없이도 분명했다. 소리는 배운 흔적을 숨기지 않았고, 계보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 무대를 관통하는 태도는 일관됐다. 드러내기보다 잇는 것, 증명하기보다 맡기는 것이었다.
하현조는 공연 중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이 가락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이어져 왔느냐입니다. 제 몸은 그 시간을 잠시 맡아 연주할 뿐입니다.” 이 말은 겸손한 소회가 아니라, 이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들렸다.
이날 무대에는 서일도의 가야금병창도 함께했다. 가야금 위에 얹힌 소리는 안성 풍류의 결을 넓히며, 전통이 단일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확장되는 세계임을 보여주었다. 안성의 흥은 고여 있지 않았다. 여전히 다른 숨결과 만나며 살아 있었다.
남사당풍물놀이가 이어지자 판은 다시 살아났다. 별새가락으로 문을 열고, 당산벌림과 마당놀이, 자진마당놀이로 이어지는 흐름은 원형의 질서를 지키면서도 오늘의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해설은 관객을 판 밖에 세우지 않았다. 가락의 구조와 의미를 풀어내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판 안으로 끌어들였다.
피날레는 안성아르랑타령이었다.
이 노래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청룡사를 중심으로 한 사당패와 남사당패의 전승가락, 『매천야록』과 일제강점기 조사 기록, 그리고 김기복 선생의 육성 채록으로 이어져 온 시간의 증언이다. 채수 총감독은 마지막 아르랑 해설에서, 이 노래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 소리로 남은 결과임을 또렷하게 짚어냈다. 관객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들은 연주자가 아니라 전달자였다. 안성가락지킴이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이 공연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소리는 멈췄지만, 전승은 계속되고 있었다.
공연은 약 90분 남짓. 길지 않았다. 하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무엇 하나 급하게 마무리하지 않았고, 무엇 하나 과시하려 들지 않았다. 완성도보다 전승을 앞세운 이 무대는 묻는다. 전통은 어떻게 오늘에 도착하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분명했다.
가락은 혼자 오지 않는다.
사람을 건너, 시간을 잇는다.
▲ 첫 장면 모내기소리 모습
▲ 문하생들로 구성된 안성가락지킴이의 장구연주 모습
▲ 서일도의 가야금병창 모습
▲ 남사당풍물놀이
▲ 채수 총감독의 마지막 안성아르랑 해설 모습
▲ 피날레 안성아르랑타령 모습
▲ 기념촬영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