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유영희의 共感同感] 명절 연휴가 지나고 맞는 휴일이다. 의례적으로 아이들이 다녀가고 다시 일상을 맞았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언니가 다니는 동네 작은 교회에 갔다. 복음 찬양을 부르고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는데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이 채울 수 있는 공터를 만드셨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겨울을 지나면서 사실 몸과 정신이 약해 있었다. 무엇으로도 대신하거나 채울 수 없는 감정적 소모와 체력적 한계가 함께 오면서 생의 위기를 이겨내야 하는 자신과의 조용한 사투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람은 좀 불지만 두 사람은 늘 걷던 동네 유일한 오솔길인 산책로 세로야 길을 걸었다. 띠 동갑 자매가 보폭을 맞추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이 듦에 대하여
공감을 공유하며 걸으니 더 없이 다정하다. 그녀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아직도 신경 쓰이는 일들이 남아 있지만 서로 다른 수행의 지혜로 매일을 살아간다.
예전에 알고 있던 철학자들이 남긴 사상과 가르침을 어느새 다 잊고, 멍하니 있다가 들은 파스칼에 대해 궁금하여 간단하게 그가 남긴 말들을 찾아본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닌, 내면의 만족과 평화에서 비롯된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과 “모든 인간의 행동은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 두 사람이 주는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마음의 안정을 중요시함을 알 수 있다.
남의 행복을 바라보며 자신의 불행이 크다고 느끼며 공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은 내면이자 파스칼이 말한 공터를 말한다. 한번 씩 무언가 허전하고 무기력하고 쓸쓸한 내면과 만나게 되면 터질 듯 가슴이 에인다. 십년을 더 먹은 언니가 뒤 늦은 나이에 교회 문을 두드려 새벽 예배까지 다니게 된 일도 내면에 들어찬 공터를 위안하기 위함일지 모른다.
파스칼을 일컫는 여러 수식어가 있다. 신학자,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인 그의 저서 중 팡세는 종교적 이야기, 인간 본성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그동안 내면이 이렇게 공허해지도록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든다. 놀랍게도 어제는 통복천을 거닐다 아주 작은 개불알꽃을 발견하고, 오늘은 영춘화와 만났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밖으로 나를 밀어내어 걷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 할 기쁨이다.
새로움으로 나를 이끌어가지 않는다면 공터는 은폐되어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만보기를 보니 만 오천 보를 걸었다. 시원찮은 다리로 열심히 보폭을 유지한 노년의 언니가 조금 밝아 보인다. 시름을 걷는 해와 바람에 내면이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