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다량의 영양분을 취하듯 다독을 한다. 노안으로 읽기가 힘드니 오디오북을 듣는다. “어린왕자“의 장미꽃 수다가 귀에 수 없이 다가왔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제제가 40대가 되어 하늘의 별이 된 포르투가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에 가슴 뭉클하게 된다. 예전에 느끼지 못 했던 감동이 이봄의 새순 같이 오른다.
모처럼 세 친구와 만났다. 지나간 겨울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인생의 흥이 오른다. 사람은 모름지기 떠들어 속내를 풀어낼 때 가벼워지나 보다. 겨울의 거울은 나에게만 비추는 줄 알았더니 그녀들에게도 평등하게 비추었구나. 이야기 속에 담긴 눈물이 촉촉하다.
<</span>다산어록청산>을 옮겨 본다.
‘세상을 다 얻은 양 날뛰지도 말고, 세상이 다 끝난 듯 한숨 쉬지도 마라. 바람이 불어 흔들 수 있는 것은 표면에 물결뿐이다. 그 깊은 물속은 미동조차 않는다. 웅숭깊은 속내를 지녀, 경박함을 끊어라.’
삶의 그늘을 보면 모두 비슷하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가진 숙명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감추고 풀지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자 나도 나의 이야기로 고저를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도 자신의 울음을 던지자 모두가 하나로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한 번도 얻은 적이 없어 날뛰지도, 한숨 쉬지도 않는다. 삶의 이분법을 논한 적 없는 순수한 혈통의 기록이 사원 같다.
이야기 속에는 신통하게도 감정을 공감하는 묘약이 흐른다. 네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반응하고, 네 이야기에는 분노가 방출한다. 모두가 울고 웃으며 봄이 나를 살렸다고 시간에 감사를 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느 계절에 속한 유속민인가?
화두가 된 소통은 불통에 있다.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나 그 오래 살아온 사람과의 문제다. 그는 언제나, 언제부터인가 불통이어 괴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갑자기 화두의 본질적 문제를 좁혀 말한 건 그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좁은 게 넓은 의미의 문제의식이 된 건 사람이 잘 살고 싶은 본질적 욕구 작용 같기도 하다.
다시, 다산어록청산을 본다. 이 깊고 짧은 문장을 보고 또 보면 물결을 다시 보게 되어 자신이 지닌 경박함도 끊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람 흉을 보게 되어 스스로 괴로운 것은 물결의 파장에 흔들리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