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섬’을 배우고, 우리는 ‘마음’을 배웠다
시민들의 정성이 만든 제주, 아이의 질문이 남긴 깊은 울림
▲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이 마련한 ‘제주 체험학습 성과공유회’ 모습[우리타임즈 = 김영식 기자] 4월 23일 저녁, 안성맞춤아트홀 4층 문화살롱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용히 모여들었다. 아이들이 제주에서 돌아온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만들고 응원해 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무대에는 사진 몇 장과 영상 장비, 작은 마이크가 놓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의 공기는 유난히 따뜻했다. 약 100여 명의 내빈과 가족, 자원봉사자, 그리고 시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날 행사는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이 마련한 ‘제주 체험학습 성과공유회’였다. 이름은 성과공유회였지만, 이곳에서 나눈 것은 ‘결과’가 아니라 아이들이 제주에서 만나고 돌아온 ‘마음’이었다.
□ “섬이 뭐예요?” 아이의 질문이 남긴 울림
▲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이 마련한 ‘제주 체험학습 성과공유회’ 에 전시된 사진들영상이 흐르자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이 화면을 채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앞에서 두 팔을 벌린 모습, 숙소에서 서로 기대어 웃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 표정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처음’이라는 표정이었다.
체험 중,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다고 했다.
“섬이 뭐예요?”
지리책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아이의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 그리고 이제 얼마나 넓어지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서툰 감사장이 만든 눈물의 순간
▲ 아이들의 마음으로 채운, 세상에서 가장 진심 어린 감사장을 받은 김복영 선생님 모습제주여행 2박 3일 동안 아이들 곁을 지켜준 자원봉사 선생님들 앞으로 아이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손에 들고 있던 감사장을 펼쳤다. 그들의 마음으로 채운, 세상에서 가장 진심 어린 감사장이었다.
서툰 한국어, 느린 속도, 흔들리는 발음.
“선생님, 감사합니다.” “바다를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같이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읽어 내려갈수록, 선생님들의 눈에서 먼저 눈물이 흘렀다. 행사장은 말없이 젖어들었다.
□ “왜 나는 고려인인데 외국인이에요?”
▲ 초등학교 2학년 심마리아나의 이야기이어 소개된 초등학교 2학년 심마리아나의 이야기.
제주를 다녀온 뒤, 마리아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왜 나는 고려인인데, 왜 나는 외국인이에요?”
그 질문은 아이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고, 결국 글이 되었다. 그 글은 수원출입국·외국인청이 주관한 ‘2026 나의 뿌리, 나의 날개: 대한민국 국적 이야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마리아나의 글에는 이런 문장이 담겨 있었다.
“엄마는 고려인이야? 그러면 나는 카자흐스탄 사람이야?나는 카자흐스탄 사람인지, 고려인인지, 대한민국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엄마가 고려인이라 대한민국에 같이 왔습니다.그런데 엄마는 카자흐스탄 사람입니다.그런데 고려인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여기는 대한민국인데 왜 카자흐스탄 사람인 내가 온 게 슬펐습니다.
제주도는 예쁜 섬이에요. 사진으로 본 노란 꽃도 보고, 바다도 보고,히리보도 가고, 테디베어하우스도 가고, 제주민속촌도 갔어요.바다도 봤어요. 집으로 오기 싫었어요.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공항에서 외국인이 나가는 길이 달라요. 나는 외국인이에요.나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싶어요.제주도 갈 때 외국인이 나가는 길로 가지 않을래요.엄마가 고려인도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외국인이에요.
나는 빨리 대한민국 사람이 되고 싶어요.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으로 예쁜 섬 제주도에 또 가고 싶어요“
상장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아이 한 명이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었다.
□ 시민들의 후원과 정성이 만든 ‘바다’
▲ 행사의 마지막, 아이들은 ‘우리는 행복해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다
사실 이번 제주 체험학습은 처음부터 가능해 보이는 계획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원 없이 이 아이들을 제주도에 데려간다고요?”
하지만 그 걱정을 넘어선 것은 많은 시민들의 후원과 정성이었다. 누군가는 항공료를 보탰고, 누군가는 숙박비를, 누군가는 간식을, 또 누군가는 시간을 내어 자원봉사로 아이들 곁을 지켰다.
이름 없이 보탠 마음들이 모여, 아이들은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마을이 아이들을 바다로 데려다 준 시간이었다.
□ “우리는 행복해요”
▲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 박진숙 센터장행사의 마지막, 아이들은 ‘우리는 행복해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했다. 작은 몸짓, 환한 얼굴, 서툰 동작.
그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유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이 필요했는지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성시 다함께돌봄센터 1호점 박진숙 센터장은 “이번 제주 체험학습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이 ‘세상’을 만난 시간이었다”라며 “처음에는 여건상 어렵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꼭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으며 특히, 이 시간이 가능했던 것은 이름 없이 후원한 시민들과 자원봉사자, 보호자들의 참여 덕분”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이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아이들의 성장을 돕겠다”고 말했다.
문화살롱을 나서며 오래 남은 문장이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
“섬이 뭐예요?”라고 묻던 아이가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는 행복해요”를 노래하기까지. 어쩌면 제주를 다녀온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 질문과 노래를 통해 우리 어른들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