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독거로 사는 지인이 급하게 집을 비운 관계로, 대신 에어컨 점검 기사를 맞이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저녁 여덟 시 반쯤 도착하겠다던 기사는 밤 아홉 시를 훌쩍 넘겨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에어컨은 별다른 이상 없이 정상 작동했다. 점검을 마친 기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그의 지친 등 뒤로 파란색의 대기업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일하시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그는 요즘 한창 에어컨 수요가 몰리는 성수기라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이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 뒤로 가려진 고단한 노동의 무게가 방 안의 냉기 속에서도 묵직하게 전해졌다.
최근 대기업 노조가 연일 쟁의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다가 결국 극적인 협상을 타결지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러나 보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리 개운치 않았다. 오늘날 이 사회의 중심에 선 젊은이들의 노동운동이, 과거 연대와 희생을 바탕으로 삼았던 선배 세대의 걸음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가치나 사회적 형평성보다는, 철저하게 개인 중심적인 사욕과 집단 이기주의로 점철된 듯한 극렬함에 마음 한구석이 옥죄어 왔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지성과 성숙한 철학은 증발해 버린채, 오직 눈앞의 물질적 보상과 자산 증식에만 편중된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 속에서, 우리 사회의 암울한 미래상을 마주하는 듯해 쓸쓸함이 더해졌다.
얼마 전에는 홀로 사는 오십 대 남동생을 집으로 불러 반찬 몇 가지를 살뜰히 챙겨 안겨주었다. 못 본 사이 그의 머리칼은 희끗희끗해졌고, 뺨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남부럽지 않은 반듯한 직장에 서 책상을 지켰던 그였지만, 세월의 풍파를 겪은 지금은 고덕 삼성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하루하루 육체노동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일이 너무 고되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며 말끝을 흐리는 동생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지만, 그저 묵묵히 등을 토닥여줄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 땅에는 이렇듯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며 간신히 하루의 벌이를 이어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반면, 한쪽에서는 이미 남부럽지 않은 고임금을 누리면서도 더 많은 부를 쟁취하기 위해 온 몸달아 하는 젊은이들이 존재한다. 이 극과 극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깊은 상대적 박탈감과 서글픔이 밀려온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평생을 노동의 굴레 속에서 살아왔다. 매달 쥐어지는 작은 급여를 쪼개고 또 조이며 성실하게 살아왔건만, 세월이 흘러도 가계 살림살이는 좀처럼 눈에 띄게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같은 평범한 범인(凡人)들이 무슨 신통한 수로 벼락부자가 되겠는가. 그저 내게 주어진 가쁜 하루에 충실할 뿐이었다.
문득 몇 해 전 다녀왔던 청계천로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이 뇌리를 스쳤다. 빛바랜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된 안내관을 따라 걸으며,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의 치열했던 삶을 깊이 복기해 보았다.
환기조차 되지 않는 좁고 어두운, 먼지 자욱한 다락방에서 콜록이며 재봉틀을 돌리던 어린 여공들의 애달픈 숨소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의 조건인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한 자루의 촛불이 되었던 그.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일깨우고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의 불을 지핀 그의 숭고한 정신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길고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진정한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자신의 온 삶과 진심을 바쳤던 그의 고결한 행동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이익 중심적 노동운동은 그 격(格)이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온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나, 오직 지나친 물질적 욕망만을 좇는 이 사회의 주인공인 청년들의 모습에서 과거 전태일이 보여주었던 건강하고 건실한 노동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우리 삶의 저편에 뜬 무지개의 빛깔이 오직 ‘돈’이라는 단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해져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인 일인가. 온종일 고단한 대지 위를 버텨온, 퉁퉁 부어오른 발을 감싸고 있던 양말을 조용히 벗어던진다.
서늘해지는 발끝을 바라보며,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성찰 없는 삶의 방향에 대해 깊고 무거운 질문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