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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12-03 13:03:28
  • 수정 2016-12-03 13: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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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에서 10월령 10월은 맹동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다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을 필 하도다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마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 유영희 시인 - (사) 평택문인협회회원. 시샘문학회원. 문예사조로등단. 경기문학공로상수상. 평안신문칼럼게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11월 둘째 셋째 주가 되면 예전과 다르게 김장이 절정을 이룬다. 여전히 겨울을 나기 위한 가장 큰 먹거리 준비임이 틀림없다. 세월이 가면서 김장 문화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오래전 마당 한켠에 쌓인 이백여 포기가 넘는 배추를 다듬고 쪼개어 소금을 풀어 커다란 고무 다라에 배추마다 켜켜로 소금을 뿌려 잠을 재우는 동안 무채를 쓸고 김장 김치에 필요한 갓이며 쪽파 등 야채를 준비하고 찹쌀 죽을 쑤어 놓는다.


그리고 잠을 설치며 일어나 뒤집기를 반복하며 아픈 허리로 느껴지는 새벽의 불빛은 왜 그리 흐릿하고 새벽 공기 또한 칼바람인지 오랫동안 큰살림을 맡아 했던 나로서는 절임배추를 주문해 간소한 김장 치루기를 하는 요즘 여간 감질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외암리 민속마을 ‘외암촌’이란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잔치국수가 주 요리인지라 그곳에서 방대한 물량의 김장 의식을 치뤘다.


이천 오백여 포기가 넘는 배추가 공수되자 마을의 주민들이 달려와 다듬고 절이고 속 재료 준비를 마치고 수많은 노란 컨테이너 박스마다 김치가 담긴 후 저장고로 들어가는 시간까지 꼬박 5일 이상이 걸린 것 같다.


다음해 가을 김장철이 올 때까지 손님의 입맛을 책임질 귀한 김치를 보며 평생을 일을 놓은 적 없는 노부부의 삶 깊은 철학까지 덩달아 소박하게 익어 가는 듯 뿌듯하였다.


민속마을이란 정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주민들의 상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람과 사람의 행동은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한 공동체안 불꽃같은 동행이라 생각해 본다. 겨울의 초입, 김장을 해두었으니 펄펄 눈이 나려도 괜찮다.


월령마다 대비한 슬기로운 미풍양식이 맛있게 익은 김치처럼 스며들어 동한의 문풍지도 바람을 이겼으리라. 그 어떤 반찬보다 김치가 없으면 아직은 무언가 살짝 허전해지는 21세기 밥상, 문득 아내를 위해 가난한 남편이 차린 밥상이 생각난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 했던가. 김치가 인스턴트에 물든 바쁜 현대인의 건강 치유 음식으로 영원히 남아 주기를 김장 월령가로 대답해 본다.


유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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