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희 시인 [유영희의 共感同感]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은 지 열흘 만인 어제, 왼쪽 눈도 수술했다. 노화로 찾아오는 질환이라지만 수술 전에는 여러 차례 검안을 하고, 대기실에서는 혈압을 잰 뒤 동공을 확장하는 안약을 수시로 넣었다. 앞선 환자의 수술이 끝나고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한쪽 눈을 이미 수술한 경험이 있지만, 눈이라는 예민한 부위인 데다 조금만 움직여도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에 긴장감이 밀려왔다.
마취 안약을 넣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지나치게 밝은 천장의 의료용 조명이 얼굴을 비추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동공을 넓힌 눈꺼풀 사이로 수술 기구가 희미하게 보이고, 소독수가 흘러내렸다. 무언가 답답하게 눈을 가리고 있던 막이 벗겨지는 듯한 시원함도 느껴졌다. 그러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색채들이 눈앞에서 어지럽게 일렁였다. 의사의 손놀림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수술이 끝났고,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이 들려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안과를 찾아 안대를 풀었다. 앞서 수술한 오른쪽 눈도 잘 아물었고, 어제 수술한 왼쪽 눈의 시력도 1.0까지 나왔다. 앞으로 시력이 안정될 때까지 안약을 정해진 시간에 넣고, 지켜야 할 주의 사항도 꼼꼼히 들었다.
이십여 년 전, 엄마도 양쪽 눈의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다. 그러나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심장질환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나는 수술실 유리창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텔레비전 화면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늘 흘려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집 안을 청소하다 매트를 걷어내자, 그 안쪽에 여기저기 흩어진 알약들이 수북이 나왔다. 그때 나는 이미 출가한 딸이었고, 엄마를 온전히 살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때의 무심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내가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은 7년 전쯤이다. 몇 년 전부터 눈앞이 급격히 흐릿해지고 침침해지면서 시력도 많이 떨어졌다. 일상에서 겪는 불편은 생각보다 컸다. 노화로 찾아오는 질환이지만, 내 나이에 비해서는 진행이 조금 빠른 편이라고 했다.
수술을 마친 지금, 눈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다. 눈동자를 지그시 누르던 듯한 불편함이 사라지니 세상을 새로 사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몸의 감각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누군가는 치아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하며, 어느 어르신은 심한 이명으로 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두 언니는 어릴 적 앓았던 중이염의 영향인지 후각을 잃었다. 냄비를 태워 집 안에 연기가 가득 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꽃이 피는 계절에도 꽃향기를 맡지 못한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던 감각들이 어느 날 불편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다행히 나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수술을 받아 다시 환하고 맑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 마음속 깊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세상의 신들이여.”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눈이 불편해 듣기만 했던 책을 이제는 직접 펼쳐 읽는다. 화장품 병에 깨알같이 적힌 글씨도, 약통에 쓰인 약의 효능도 또렷하게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이 내게는 새롭게 되찾은 기쁨이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세상, 답답하고 불편했을 엄마의 눈앞을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가 다시 가까이 다가온다. 그때 엄마가 얼마나 불편하셨을지, 왜 진작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받고 잠시나마 세상을 밝게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되찾은 맑은 시야가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눈이 밝아지니 세상이 환해졌고, 그 환한 세상 속에서 나는 다시 엄마를 만난다.
오늘도 그리운 엄마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