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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마을은 울력 끝내고 고기를 먹습니다.” - 금광면 양지편마을 봄맞이 마을대청소 하는 날.
  • 기사등록 2018-04-03 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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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의 시작은 의례히 마을이장님의 방송으로부터다.


“아, 아, 아. 알리것습니다. 오늘은 마을대청소가 있는 날입니다. 양지편마을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아침 잡수시고 좀 있다가 마을회관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도시에선 상상도 못하는 시각 아침 6시에 마을방송 울려 퍼져.


▲ 아침 6시에 마을방송 울려 퍼지면 동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청소를 시작한다.


아침 6시에 이런 마을 방송이 버젓이(?) 마을에 울려 퍼진다. 도시 같으면 어림도 없는 방송시간이지만, 우리 마을은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라 일찍들 일어나시니,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다.


사실은 우리 마을 이장님(우리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 이번에 이장이 됨)은 총각이장님인데, 신세대 감각을 발휘해 며칠 전부터 휴대폰 문자로 “마을 대청소 한다”고 알리긴 했었다. 이렇게 미리 알려드려도 문자가 생활화되지 않으신 어르신들과, 당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어르신들을 위해, 당일 아침 마을방송은 필수다.


아침 식사를 끝낸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마을회관 앞마당으로 모여든다. 마을 아버지와 어머니, 형님과 형수님들의 손에는 낫, 호미, 괭이, 갈고리, 삽, 빗자루, 톱 등 다양한 청소도구들이 들려 있다. 이 중에서 역시 ‘군계일학’은 경운기를 몰고 나타나는 마을 형님이다. 때론 트랙터가 동원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다.


▲ 다양한 청소도구들이 들려 있지만 이 중에서 역시 ‘군계일학’은 경운기를 몰고 나타나는 마을 형님이다.


평생 마을 울력을 해온 분들이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맘때엔 무얼 할지를 잘 아신다. 그래서 울 마을 울력은 감독이 따로 없고 일꾼이 따로 없다. 오늘 미션은 ‘마을길 청소 및 정비’라는 건 이미 꿰뚫고들 계신다. 청소구간도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마을대로라는 것도. 청소시작도 먼저 온 사람으로부터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모두 청소도구 가져 오는데, 나는 맨몸인 이유.


“청소하러 오는 디, 맨몸으로 온단 말이여?”

“아따. 맨몸으로 일하려고 그러자뉴”

“그려. 한번 오늘 빡세게 함 굴러봐. 하하하하”


맨몸으로 나타난 나에게 마을 형님들이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거의 모두가 청소도구를 들고 나타날 때, 왜 나는 맨몸일까. 낫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낫으로 하는 일만 하면 되고, 빗자루를 들고 나타난 사람은 빗자루로 하는 일만 하면 되지만, 맨몸으로 온 사람은 이것저것 살피면서 전천후로 일해야 된다는 걸 해본 사람은 안다.


내가 맨몸으로 나타난 큰 이유가 또 있다는 걸 마을 분들은 다 아신다. 마을의 역사를 남기려고 휴대폰으로 촬영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마을에선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사람은 몇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마저도 우리 마을 베테랑 사용자가 바로 나다. 마을역사를 남기기 위해 ‘마을잔치, 마을 대소사, 마을품앗이.....’등을 촬영하는 것은 내 담당이다. 마을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등에 알리는 것도 내 담당이다.


먹으려고 청소하나 싶지만, 바로 이 맛 아닙니까.


이렇게 시작된 마을 대청소. 하하 호호 웃어가며 두어 시간을 하고나니 일이 끝났다. 미션을 수행했으니 그 다음은 뭐? 바로 그렇다. ‘고기타임’이다. 이 시간은 미리 예고 된 거다. 며칠 전 이장님의 문자에 “마을 대청소 후 삼겹살 파티 함”이라고 분명히 쓰여 있었다. 먹으려고 청소한 건 아니지만, 청소하고 먹어줘야 제 맛이 아니던가.


청소를 끝내고 나서 먼지를 제대로 터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마을 분들은 마을회관 안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럴 때 동작은 마을 엄니들이 제일 빠르다. 이미 고기 파티를 하려고 준비부터 해놓으신 건 마을엄니들이시다.


고기불판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자리를 잡는다. 마을에서 제일 고령 아버지들 자리, 비교적 젊은 남성들(그래 봐도 50~60대) 자리, 엄니들과 형수님들 자리 등, 3부분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건 누가 일부러 이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우리 마을의 자연스러운 자리배치도다. 여성인권 차원에서 보면 좀 그렇지만, 우리 마을은 오랫동안 그래온 듯하다.


▲ 마을회관에 펼쳐놓은 고기불판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마을사람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질 소냐. ‘삼겹살에 소주’는 진리 아니던가. 지글지글 대는 고기 볶는 소리와 건배하는 소리와 수다 떠는 소리에 마을회관은 삽시간에 시골장터가 된다. 여기서 하하, 저기서 호호, 여기서 시끌, 저기서 벅적. 이런 걸 보면 먹으려고 청소하는 것이 맞지 싶다.


울 마을은 적어도 1년에 3회 이상 마을울력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마을은 1년에 3회 이상은 마을 울력을 하는 듯하다. 오늘처럼 봄맞이 대청소, 추석 명절맞이 풀 깎기, 설 명절맞이 대청소 등.


그나저나 이런 마을울력이 언제까지 가려나. 어르신들이 하나둘 돌아가시면, 이런 풍습도 하나둘 사라지려나. 알 수는 없지만, 하는 데까지 하고, 지키는 데까지 지켜봐야겠다. 마을 분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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